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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생각

by 용간

라시도에게


오늘 운전을 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아빠는 대학생일 때 운전면허를 땄어.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빠가 운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 뭐, 위험하니까. 운전해야 할 이유도 없었고.


하지만 면허를 따고 나면 운전을 해보고 싶지 않겠어? 그래서 가끔 할머니 몰래 차를 몰고 나갔지. 할머니는 출장으로 바빴고, 할아버지는 운전을 별로 안 좋아하셨으니까, 차가 그냥 주차되어 있을 때가 많았거든.


어느 날 무슨 이유에서인지 친구를 불러서 강화도를 갔어. 초보 운전에 첫 장거리 운전이었지만, 재미났던 거 같아. 뭘 보러 갔는지도 기억도 안 나. 보슬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다는 것 밖에.


돌아오는 길에 저녁을 먹자고 숙대 근처에 갔는데, 큰 사고를 냈어. 교내에서 길을 걷던 분이 검정 우산을 쓰고 가셨는데, 아빠가 잘 못 본 거지. 다행히 교내라 속도는 내고 있지 않았지만, 사람을 쳤으니…


정말 머리가 하야지고, 하늘이 무너진 느낌이었지. 응급차를 불렀는지도 기억이 안 나. 친구가 불렀나? 다음 기억은 그분이 계신 응급실까지 따라간 것이었어. 다행히 크게 다치시진 않은 것 같은데… 우리 행색을 보신 건지, 애들이어서 그런 건지, 일단 그냥 가라고 하셨어. 그래서 연락처를 드리고 집에 돌아온 것 같아.


돌아온 뒤,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지. 너무 크게 혼이 날 거라고 생각했어. 할머니는 출장 가셨던 것 같아. 할아버지가 계셨어.


몰래 차를 가져나갔는데, 사고를 냈어요.


뭐라고 말씀드린 건지 기억도 잘 안나. 당연히 큰 꾸지람을 들을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할아버지는


너는 괜찮냐?


그렇게 물어보시곤, 말이 없으셨어. 그 뒤로도 묻지 않으셨고. 할머니에게 말하셨는지도 모르겠어. 할머니도 그 뒤로 한 번도 아빠한테 뭐라 하지 않으셨거든. 몇 일일 마음 졸이며 살았는데 말이지. 이상하게도 생각했어. 혼날 일을 했는데 혼나지 않았으니.


오늘 그때 일이 생각나며, 너희가 사고를 내고 집에 오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어.


흔히들 자식을 낳으면 부모 마음을 알 수 있다는데.. 맞는 말이더라. 너희 걱정이 먼저 들 것 같더라.


할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싶네. 그때 왜 화를 안 내셨냐고. 아빠가 오늘 든 생각과 같았을까?


너희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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