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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간

라시도에게


아빠도 책을 참 좋아했지만 너희만큼은 아니었어. 엄마 아빠는 너희가 책을 무지 좋아해서 자랑스럽다. 물론 눈이 나빠지는 것 같아서 좀 걱정이긴 하지만.


오늘은 책을 잘 골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일단 책을 다양하게 읽어야 해. 소설이든, 교양서적이든. 작가가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그러다보면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어떤 책이 나쁜 책인지 알아갈 수 있을 거야.


어떤 책들은 예쁘지만, 내용이 없을 수 있어. 새로운 정보도 아니고, 다른 곳에서 가져온 정보를 그저 나열하는데 그칠 수 있지. 이런 책은 가치가 덜한 책이야.


좋은 책은 저자만의 독특한 인사이트가 있고, 메시지가 명확한 책이야. 너희가 그 책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저자의 목소리를 귀기울이며 너희 상상으로 그 목소리와 대화할 수 있거든. 그러면 너희도 너희만의 관점을 발달시킬 수 있을 거야. 아빠에겐 리처드 도킨스의 책들이나, 장하준의 책들이 그랬어. 내가 다 동의하진 않더라도 나의 생각을 정립하게끔 해준 책들이야.


너희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진정성 있게 묘사해 주는 책도 좋은 책이야. 많은 소설들이, 너희가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경험케 하고, 이해하게끔 해 줄 수 있어.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나, 달과 6 팬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이 그런 책이었던 것 같아.


너희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들도 좋은 책이지.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나 티핑 포인트가 잘 몰랐던 세계로 아빠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 것 같아.


깊은 사색을 유도하는 책들도 좋은 책이야.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나, 플라톤의 국가론, C.S. 루이스의 기적과 같은 책들은 깊이 있는 사색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야.


너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가공해서 정해주는 책들은 깊게 읽을 만한 책들은 아니란다. 그런 책들은 그냥 훑어도 돼. 너희 생각을 자극하지 않으니, TV를 멍하니 보는 것과 다름이 없지.


그런 의미에서 고전을 많이 읽으렴. AI가 만연한 세상에 왜 고전을 읽어야 하냐 물으면, 고전은 너희 생각을 자극하기 때문이야. 아빠는 플라톤의 국가론의 내용을 다 기억하진 못해. 하지만 그 책을 읽으며 논리의 구조를 익힌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 죄와 벌의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그 책을 읽으며 도덕적 잣대의 한계를 두드리며 나의 도덕에 대한 관점을 정립한 것 같아.


물론 고전을 읽어봤다는 자신감도 붙지.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정독하는데 한 세 달은 걸린 것 같아. 엄마를 커피숍에 불러놓고 그 책을 읽는 게 데이트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지.


다양한 책을 읽으면 어떤 책들이 좋은 책이고 어떤 책들이 별로인 책인지 구분이 되기 시작할 거야. 그런 능력을 기르길 바란다.


너희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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