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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업데이트하기

옛 동료와 멀어지기

by 용간

매니저로의 승진은 경력에 중요한 이정표이다. 일반적인 회사 경력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주로 판매, 재무, 회계, 인사 등의 제한된 업무를 다루지만, 매니저로 승진 후에는 여러 분야를 다루는 다면적 업무를 맡게 되며, 조직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더 나아가 본인의 팀과 부서만 신경 쓰기 보다, 회사 안에서 자신의 팀과 부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양한 부서의 상급자들과 유연하게 소통해야 함과 동시에, 기존 부서원들에게 지속적으로 동기를 유발하는 일 또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즉, 승진 이후에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업무를 감당하게 된다.


네트워킹은 이런 새로운 종류의 업무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부서원들 간의 관계만이 중요했던 시기는 지나갔고, 타 부서의 사람들과도 긴밀히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매니저로의 승진과 더불어 자신의 네트워크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타 부서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바깥 고객들을 관리하며, 관계자들의 명함을 잘 보관하고, 부서 회식 자리를 이끌거나, 편하지 않은 사람들과 골프를 쳐야 할 수도 있다.


새로운 네트워킹을 한다는 말을 들으면 일반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만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네트워크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것은 옛 동료들과 멀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옛 동료들과 멀어진다... 이것은 쉬운 일일까? 옛사람을 버린다니, 차가운 사람. 자칫 나쁜 평판을 남길 것이다. 상상해 보라. 승진하더니, 이제는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연락도 잘 되지 않는 그런 사람. 충분히 나빠 보이지 않나?


그렇지만 옛 동료들과 멀어지는 건 꼭 필요한 변화의 단계이다.




네트워크 수용력은 한계가 있다.


사람들은 모두 네트워크 크기에 한계를 가진다. 던바의 수 (Dunbar's number)라고 알려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의미 있는 인간관계는 대략 150명 정도라고 한다.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정말 가까운 인간관계는 대략 5-15명으로 제한된다. 물론 당신이 대문자 E라면 그 크기는 좀 클 수도 있지만 말이다.


만약 당신의 네트워크에 의미 있는 관계가 이미 가득 채워져 있다면 새로운 관계를 추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관계를 추가하기 위해선 옛 동료들과 멀어져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옛 동료와 멀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함께 했던 고생과 서로에게 의지했던 기억, 오랜 시간을 같이 하면서 만든 공통의 경험이 서로를 묶어주기 때문에 옛 동료와 멀어지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만약 옛 동료들과 적극적으로 멀어지려 한다면? 욕먹을 일이다.


그러면 옛 동료와 멀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옛 동료들을 애써 무시하고, 모른 척하는 것이 버린다는 것인가?


실제로 네트워크의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적응하느라 바쁜 상황 속에서 옛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네트워크는 서서히 변화한다. 하지만 승진의 상황, 아니면 새로운 학교로 진학한 상황 같은 경우에는 옛사람들과의 결별이 외부적인 요인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의식적으로 새로운 상황에서의 네트워킹과 옛사람들과 네트워크 중에 선택해야 한다.




옛 네트워크의 함정


연구에 따르면, 새로운 직무를 가진 뒤에도 옛 동료들과의 관계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새로운 직무를 습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연유한다. 첫째, 옛 동료들과의 관계는 새로운 직무에 필요한 정보나 인사이트를 제공해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옛 동료들과의 네트워크는 옛 업무와 연관성이 더 높고, 새로운 직무와는 연관성이 낮기 때문이다. 둘째, 더욱 중요한 이유로, 옛사람들과의 관계가 새로운 역할을 배우고 체득하는 것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매니저로의 승진하면 다른 종류의 행동양식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다른 부서와의 소통과 협업을 중재하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직무 수행의 평가자로의 역할도 추가된다. 자신의 업무평가 잣대도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부서 혹은 옛 동료와의 네트워크를 떠나지 못하고 그들과만 어울린다면? 새로운 역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옛 역할(동료)과 새 역할(상급자) 사이에서 스스로 혼란스러워 할 가능성이 많다.


인시아드 (INSEAD) 경영대학원의 마틴 가줄로 (Martin Gargiulo) 교수의 연구는 이러한 옛 네트워크의 함정에 어떤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지 밝힌다. 이탈리아의 한 컴퓨터 회사에서 새로 승진한 매니저들을 상대로 한 설문 연구에서, 가줄로 교수는 그림 1의 왼쪽에서 보는 것과 같이 응집된 네트워크를 형성한 사람들이 옛 네트워크의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새로운 업무 습득에 부진하였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림 1. 응집된 네트워크와 개방된 네트워크


일반적으로 응집된 네트워크는 네트워크 구성원들을 끈끈하게 묶어주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며, 따라서 서로 의지하며 지식이나 기회를 공유하기 쉽게 해 준다. 따라서 응집된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들은 정형화된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준다는 것이 많은 연구를 통해서 밝혀진 내용이다. 다만, 이런 응집된 네트워크는 깨지기 쉽지 않다.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면 응집된 네트워크는 스스로를 가두게 할 수도 있다.


한 부서에서 특화된 업무를 하는 상황이라면 응집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이런 네트워크는 승진 후 새로운 업무를 습득하고 역할을 배우는데 부담을 주는 것이다. 옛사람들의 기대와 신뢰를 깨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로 깊은 관계를 공유하는 옛 부서원들이 회식 자리에 불러내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쉽게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필자도 이런 경험이 있다. 필자는 3년 내내 반의 거의 바뀌지 않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성비도 불균형해서 상대적으로 적었던 동성 친구들과의 네트워크는 유난히 응집력이 강했다. 그 응집력은 대학이 간 뒤에도 유효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만 했던 지방에서 온 동기들과는 다르게, 필자는 여전히 고등학교 친구들하고만 어울려 다녔고 고등학교를 7년 다닌 것 같다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수 십 년이 지난 뒤 돌이켜 보니 필자에겐 대학 친구가 많이 없다. 옛 네트워크가 강력하게 당기는 힘 때문에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실패한 것이다.


반면 그림 1의 오른쪽과 같은 개방된 네트워크는 네트워크 구성원들의 관계가 긴밀하지는 못하지만, 같은 이유 때문에 옛 동료로부터 조금 더 쉽게 멀어질 수 있게 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새 역할을 배워야 하는 승진자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좀 더 개방되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옛 네트워크 파훼하기


필자는 이전 연구에서 법무법인이나 컨설팅 회사, 혹은 회계법인 같은 전문직의 회사들에서 막 승진한 주니어 파트너의 네트워크가 18개월의 기간 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아봤다. 이 연구를 통해서 사람들은 옛 네트워크를 떠날 때, 정을 떼기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깊이 신뢰하는 관계들, 특히 업무 외에 사적으로 서로에게 의지하던 관계들은 승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자신의 네트워크를 가치 있고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첫째, 유능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유지되었다.

둘째, 옛 상사와의 관계도 잘 유지되었다.

셋째, 업무적 관계와 함께 사회적 관계를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중첩적인 관계들이 잘 유지되었다.

넷째, 중복된 관계들 중에서 제일 유능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잘 유지된 반면, 덜 유능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쉽게 깨졌다.


이 네 번째가 가장 놀라운 발견이라 여겨져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네트워크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식이 생기면,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계산을 해야 한다. 모두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적으로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럼 누구와 관계를 유지할까?


그림 2의 왼쪽을 보자. 당신은 현재 세 명과의 관계를 통해 응집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 세 명은 서로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 비슷한 정보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응집된 네트워크는 불필요한 중복이 많이 생겨난다.


그림 2. 승진 전과 승진 후 네트워크: 옛 사람과 멀어지기


그렇다면 이 세 명과의 관계를 모두 유지해야 할까? 그렇기에는 소요되는 비용이 너무 크다. 옛 동료와의 관계를 유지하느라 새로운 관계 형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 세 명 모두와의 관계를 끊어야 할까? 그건 평판을 위해서도 좋지 않지만, 평판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가까운 사람을 멀리 두기는 힘든 일이다.


필자의 연구에서 발견한 바로는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효율성을 고려한 선택을 내린다. 그림 2의 오른쪽처럼 세 명 중 가장 유능한다고 생각되는 사람과의 관계는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소원하게 지낸다. 즉, 중복적인 관계들을 정리하여 네트워크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든다.




승진이나 전출 후, 네트워크를 업데이트하는 것은 경력에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업데이트에 실패하여 새로운 직무, 새로운 직장, 혹은 새로운 역할에 잘 적응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옛 사람들과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고,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때,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 옛 동료들과 멀어지는 것이 그들과의 관계를 단칼에 끊어낸다는 말이 아니다. 옛 동료와 멀어지는 과정은 서서히 이루어진다.


둘, 옛 동료들과 멀어질 때도 전략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누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 사람과의 관계는 당신과 당신의 옛 세상을 연결해 주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특별히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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