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가 잘되어 있는 사람들의 성과는 항상 좋을까?
동료들과의 네트워크는 소중하다.
일하는데 풀리지 않는 난제를 직면했다고 생각해 보자. 이럴 때, 친하고 믿을 수 있는 동료들과 대화하며 조언을 구할 수 있다면, 일을 좀 더 잘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믿을 수 있는 동료들과의 관계망이 중요한 이유는 동료들과의 대화, 토론을 통해서 새로운 지식이나 인싸이트를 얻고 따라서 본인의 의사결정 능력을 향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많은 네트워크 연구에서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공고히 하고, 확장하라고 조언한다. 이런 사실은 너무나 당연히 여겨질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조언이 따로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두말하면 잔소리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네트워크의 역기능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미 네트워크의 여러 가지 역기능을 목도하고 체험했을 것이다. 능력도 없어 보이는 동료가 상사와의 좋은 관계로 인해서 기회를 더 얻고, 목소리를 더 내고, 승진도 더 빨리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지 않는가.
하지만 때로는 가까운 동료들과의 대화가 우리가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역기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회사에서, 혹은 회사 밖에서, 동료들과 지속적인 대화를 하다 보면 생각과 관점이 점점 비슷해져 간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관계는 서로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다른 사람들을 밀쳐내는 힘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믿는 동료들은 당신과 비슷한 생각을 이미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지 않더라도 오랜 관계를 통해서 서로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해져간다.
이게 왜 역기능이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생각이 서로 비슷해져가면, 우리는 서로를 좀 더 신뢰할 수 있고, 따라서 일하는데 효율을 더 높일 수도 있다. 또한 아무리 서로의 사고방식이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서로 알고 있는 정보가 다르다면 네트워크에 있는 사람들 간의 대화와 토론은 유익한 정보를 교환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서로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비슷하다면 동료들과의 대화와 토론은 새로운 인싸이트를 도출하기보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 혹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서로 확인하는 데에서 그 기능이 멈출 것이다. 무서운 것은, 우리가 인간이다 보니, 주변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 생각이 맞다는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의 네트워크는 메아리 방이 되어버린다.
ChatGPT로 대변되는 생성형 AI의 등장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하지만 생성형 AI의 등장 이전에도 대형 언어 모형(Large Language Model)은 연구에 꽤 많이 쓰이고 있었다. 특히, 문화사회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은 주제 모델링(Topic Modelling)을 이용, 종업원 간의 이메일이나 블라인드 같은 종업원 커뮤니티의 자료를 통해 글이나 대화를 몇몇 주제로 계량화하여 각 기업의 문화를 측정하려 하였다. 예를 들면, 종업원들의 대화 자료에 공격적인 언어가 사용되고, 감정적인 단어의 사용이 빈번하며, 부정적인 비교의 표현들이 많다면 그들의 기업이 공격적이고 경쟁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우리가 익숙한 문화가 우리의 언어사용을 지배한다고 전제한다.
이러한 전제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문화와 같이 극단적인 비정형 정보(Soft Information)조차 계량화하여 정형 정보(Hard Information)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이를 일종의 데이터화 혹은 데이터피케이션(Datafication)의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온라인 상품을 사는 것을 상상해 보자. 우리는 어떤 상품에 대한 평가를 알기 위해서 상품평을 읽어볼 수 있다. 이러한 상품평은 비정형 정보이다. 비정형 정보는 주관적일 가능성이 크고, 구조화되어 있지 않고, 따라서 개별적 특이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비정형 정보들과 비교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주관적인 사고과정을 거쳐 종합되어야 한다.
상품평이 정형 정보로 데이터화되는 과정은 간단하다. 설문 문항을 만들고 그에 따라 평점을 주면 된다. 이제 사람들은 개별 상품평을 읽기 전에 평점을 보고 보다 쉽게 판단을 한다. 아니, 어쩌면 평점만 보고 판단하기도 한다. 좀더 고도화된 형태를 살펴보자면, 많은 쇼핑몰들이 개별적 특이성이 높은 개개의 상품평을 생성형 AI를 이용, 간략하게 요약해서 이용자가 비교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니다.
이제 우리는 정형 정보가 가득한, 데이터피케이션이 만연한 세상을 마주하고 있다.
이렇게 정형 정보로 정렬된 세상에서 당신의 네트워크는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이러한 질문이 유의미한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어떤 네트워크에 새로운 정보가 유입되지 못했을 때 서로의 의견을 확증, 증폭시키는 메아리 방으로 변하기 쉽기 때문이다. 만약 의사결정 관리자들이 정형 정보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반대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네트워크를 통해 동료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전략적 경영연구(Strategic Management Journal)에 최근 게재된 홍콩과기대 최준락 교수와 필자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2008년 리먼브라더 사태 당시 헤지펀드들의 성과 패턴에 주목하였다.
헤지펀드는 정부 혹은 제삼자의 관리를 받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본 펀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확실히 알려줘야 한다. 이를 위해 헤지펀드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투자전략 중, 다음 두 투자전략이 서로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롱쇼트(Long-short) 펀드들은 과대평가된 자산을 공매도하고 과소평가된 자산은 매입함으로써 위험을 분산하며 차익을 실현하려고 한다. 어떤 자산이 과대 혹은 과소 평가되었는지 알기 위해서 이런 펀드들은 자산의 근본적인 가치를 측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롱쇼트 펀드들은 다방면의 자료를 모아 자산 평가를 내린다. 이 때, 펀드매니저의 주관적인 시세 판단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즉, 상당한 양의 비정형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다.
반면에, 상대적 가치(Reliatve Value) 펀드들은 차익거래 기회를 찾으려 노력한다. 이론적으로 발생해서는 안 되는 차익거래의 상황을 찾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두 회사가 합병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이 두 회사의 주가는 한 가격으로 수렴해야 한다. 하지만, 시장 투자자들의 다양한 입장이 있기 때문에 때로 두 회사의 주가는 한시적으로 서로 다를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상대적 가치 펀드들이 찾는 차익거래 기회이다. 이를 위해 상대적 가치 펀드들은 블랙숄스와 같은 계량적 모델을 차용한다. 그리고 정형 정보들을 모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델에 대입한다. 따라서 상대적 가치 펀드의 매니저들은 정형 정보에 더욱 민감하다.
본 연구는 이러한 차이에 주목한다. 롱쇼트 펀드의 매니저들이 비정형 정보를 많이 사용하는데 비해 상대적 가치 펀드의 매니저들은 정형 정보를 더 많이 사용한다.
헤지펀드를 생애주기가 짧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펀드 매니저들은 회사를 자주 옮기는 편이다. 이들의 이직은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전 직장에 있는 옛 동료들과의 관계를 들고 새 직장으로 이동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전 연구를 보면 이러한 옛 동료들과의 의사소통은 새 직장에서도 성과를 내는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옛 동료, 혹은 옛 직장을 공유하는 매니저들은 서로 신뢰를 쌓고 각자의 고민과 시황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기 쉽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그렇다면 자주 이직한 매니저의 네트워크는 잘 연결되어 있고, 넓을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일반적인 펀드 매니저의 경력을 겪지 않고 펀드 매니저가 된 사람은 어떨까? 예를 들어, 수학과, 혹은 공대를 졸업한 후 펀드에 채용되어 매니저가 된 사람들. 이들은 옛 직장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에 편입되지 않았을 것이다. 즉, 그들은 주변인, 혹은 아웃사이더들이다. 2008년 당시 미국의 금융권에서 일한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다음 그림 1에서 살펴보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의 중심으로부터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외로이 떠도는 소행성처럼 네트워크 중심으로부터 끊겨 있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의 파산은 금융 시장에 큰 충격이었다. 많은 펀드 매니저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시장의 현황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확인하고자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과 매일 밤을 새워가며 의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태는 우리에게는 정형 정보를 주로 이용하는 상대적 가치 펀드의 매니저에게도 네트워크가 가치 있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한 좋은 기회다. 왜냐하면, 리먼 사태는 펀드 매니저이 선택한 투자전략이나 네트워크 연결 상태에 무관하게 발생하였기 때문에 학자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네트워크의 내생성 문제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즉, 성과가 좋은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늘어난 것인지, 아니면 네트워크가 성과에 보탬이 된 것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리먼 사태의 전후, 매니저들의 네트워크는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태 전후 성과를 비교한다면 그 차이는 네트워크의 효과로 귀결된다. 어려운 말로, 이중차분법을 이용하여 정형 정보를 이용하는 매니저들의 네트워크가 그들의 성과에 주는 영향을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 2는 그 결과를 보여준다. 제일 놀라운 것은 상대적 가치 펀드들의 성과 차이이다. 네트워크의 중심으로부터 떨어진 매니저(Disconnected)들이 운영한 상대적 가치 펀드는 리먼 사태 당시 손실을 거의 입지 않았다. 당시 펀드들이 평균적으로 월 11% 정도의 손실을 입은 것을 감안하면, 이는 꽤 놀라운 사실이다. 반면 네트워크 중심에 위치해 있던 상대적 가치 매니저들(Connected)은 리먼 사태로 큰 손실을 입었고, 많은 펀드들이 두 달 가량 후 청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롱쇼트 펀드들은 어땠을까? 롱쇼트 펀드 매니저들의 네트워크에 상관없이 리먼 사태로 인해서 손실을 기록했다. 단, 네트워크의 중심에 잘 연결된 펀드들은 바로 회복세를 보인 반면, 네트워크에서 떨어진 펀드들은 지속적으로 높은 손실을 기록하였다.
이런 차이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데이터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했을 때, 이 연구의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의사결정자를 고용할 때 그 사람의 네트워크에 가치를 두고 있다면, 이를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하는 직무의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의견 교환을 하는 것은 메아리 방 효과만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조직을 만들 때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 직무자를 다른 사람들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경력을 고민하며 이 글을 읽은 당신이라면 이 연구의 시사점은 한 마디로 다음과 같다.
네트워크? 때로는 해가 되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네트워킹에 자신 없는 사람이라면?
데이터화가 가속화되는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성공할 수 있는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