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장벽과 경성정보환경이 만든 네트워크 외톨이의 성공기
지난 1월말, 딥시크-R1의 출시는 지난 2년여간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엔비디아의 독주에 물음표를 던졌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급락했고, 업계 당사자들과 투자자들은 다양한 추측과 예측을 내놓았다. 이제 3주가 지나간 상황에서 사람들은 초기 충격으로부터 벗어나 딥시크가 AI 시장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의견들을 종합해보면,
보다 값싼 AI의 존재로 인해서 AI의 대중화가 급진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사양 GPU를 기반으로 한 딥시크의 모델은 GPU 생산에서 병목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AI 개발 경쟁에서 하드웨어가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의 각 IT 기업들은 앞다퉈 자신의 제품에 딥시크를 탑재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는데, 데이터의 증가가 모델 개발 잠재력과 속도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저가의 특화된 AI 개발이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후발주자들이 의미있게 경쟁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다만 딥시크라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경쟁자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충격으로 남아있다. 중국에서는 미국의 지속적인 견제를 이겨낸 국가적인 자부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고, 중국 밖에서는 중국의 첨단 기술력에 대한 두려움을 더한 것 같다.
딥시크의 등장이 시장에 주는 충격파는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관련해 필자가 본 가장 유의미한 관점은 딥시크-R1이 시장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킬 수 있는, 소위 "파괴적 혁신"(Creative Destruction)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버드 경영대학(Harvard Business School)의 클레이튼 크리첸슨(Clayton Christiansen) 교수가 정립한 파괴적인 혁신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혁신이 시장을 급격히 변혁시키는 두 가지 조건을 명확히 한다.
우선 파괴적 혁신은 선도적인 기술이나 선도적인 시장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기술과 어떤 시장 계층을 목표로 하는 것인가? 파괴적 혁신은 선도적인 기술 개발 경쟁에서 벗어나, 성능은 선도적이진 않지만 값이 저렴한 기술을 목표로 한다. 둘째, 값이 저렴한 기술이기 때문에, 대중화가 쉽다. 따라서, 파괴적은 혁신은 기술의 성능으로 경쟁하는 것이나 아니라 시장 점유율로 경쟁한다. 값싼, 그러나 쓸만한 대중화된 기술을 가지고 시장 점유율을 급격히 늘리며 선도기업의 입지를 줄이는 것이다. 따라서, 선도기업들의 시장 포지션은 "파괴"된다.
AI시장의 선도 기업들이지만 실질적인 매출을 만들어내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오픈AI, 구글, 메타, 그리고 엑스(구: 트위터)에게는 딥시크의 등장은 큰 충격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선도 기업들뿐만 아니라, 이들과 긴밀히 관련된 하드웨어 업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엔비디아의 주가가 크게 흔들린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무엇이 딥시크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는가?
필자는 AI 전문가는 아니다. 개발자도 아니고, 최근에서야 일에 AI를 접목시켜보고 있는 AI 초보이다. 아직도 AI에게 슬기로운 답변을 이끌어낼 만한 프롭트 실력도 안된다. AI 시장에 대해서도 남들처럼 주워들은 이야기를 그저 종합해보고자 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러니, 딥시크가 어떻게 개발되었고, 앞으로 AI 시장이 어떻게 성장할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일은 다른 전문가들에게 듣는 것이 맞을 일이다.
딥시크의 등장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이 기업에 대한 정보와 그 기업의 창립자인 량원펑에 대해서 파헤쳐보고 있다. 간략히 이야기하면 이 회사는 저장성 항저우에 기반을 둔 퀀트헤지펀드의 개발부서에서 시작한 기업으로 그 창업자인 량원펑은 해외에서 공부한 적이 없는 중국 국내파 토종이다.
오늘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 딥시크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딥시크의 등장은 왜 놀라운가?
딥시크가 가져다준 충격은 크게 몇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선도 GPU에 대한 대중(대중) 수출금지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이 성능이 꽤나 괜찮은 AI를 개발하였다.
중국 기업 중에서도 선도 기업에 해당하는 알리바바나 텐센트가 아닌, 보잘 것이 없이 작은 딥시크라는 기업이 그 AI를 개발하였다.
기존의 AI 개발을 지배하고 있던 패러다임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많은 개발자들에게 간과되었던 방식으로 AI를 개발하였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사람들은 딥시크의 등장에 놀라워하며, 한편으로는 중국의 기술 발전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큰 자본투자를 받지 않은 중국 토종인력으로 이러한 혁신을 일구어내다니... 중국의 AI 기술력은 어디까지 발전한 것일가, 놀라워할만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딥시크의 등장이 예상하지 못할 일이었을까? 딥시크의 등장에 우리는 그저 놀라기만 해야 하는 것인가?
딥시크의 등장은 그냥 우연인가?
딥시크의 특징 두 가지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자. 첫째, 딥시크의 개발자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공부, 연구한 경험이 없는 중국 토종 개발자들이다. 이는 중국 기업들의 일반적인 기술개발 전략과는 결을 달리한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기술 기업들은 해외에서, 특히 미국에서, 훈련받은 연구기술진을 큰 돈으로 고용하여 선도 기술과의 격차를 줄이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는 사실 한국 선도 기업의 기술 개발 전략을 답습하는 것으로, 이러한 인력을 양성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필요한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매우 효과적인 개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딥시크가 개발하는 기술영역은 기존의 반도체 양산과 같은 다른 분야와는 달리 프로그래밍 같은 경성정보환경(Hard Information Environment)에 기반한다. 경성정보환경이란, 주요 정보가 표준화된 양적 정보가 주된 환경으로 이런 환경에서는 정보의 검증이 쉽고, 정보의 이동, 복제, 재사용이 쉽다. 알고리즘 개발을 위한 프로그램 코드는 경성정보의 좋은 예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기술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는 시연도 필요하고, 검증도 필요하지만 딥시크가 R1 모델을 발표하자 전 세계의 개발자들은 R1의 성능을 빠르게 검증하였고 모델 성능에 대한 논란이 거의 없었다. 왜? 딥시크의 모델 개발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경성정보이기 때문에, 이를 오픈 소스로 공개한다면 모두 쉽게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왜 중요한 것일까?
경성정보환경(Hard Information Environment), 그리고 네트워크 외톨이(Network Isolates)
필자는 이전 글을 통해서 네트워크에서 떨어진 외톨이들이 때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네트워크에서 떨어진 외톨이들이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정보 환경의 특성이라고 설명하였다. 네트워크 외톨이들은 특히 경성정보 환경에서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데, 이는 인적 네트워크가 경성정보의 이동과 해석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네트워크 외톨이들도 경성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잃지 않는다. 하지만 네트워크 외톨이들은 주류와 사적 교류가 없기 때문에 주어진 경성정보에 대해서 주류와는 다른 새로운 해석과 관점을 견지할 수 있다. 표준화되지 않고 행간에 숨은 정보를 해석해야 하는 연성정보(Soft Information)로 이루어진 정보 환경에서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다른 주체들과 소통하며 정보를 잘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표준화된 경성정보 환경에서는 사람들간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개발자들이 생각을 서로 비슷하게 만드는 일종의 메아리방(Echo Chamber)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딥시크는 네트워크 외톨이이다. 중국의 다른 선도 기업들이 실리콘 벨리에서 훈련된 인력들을 고용하면서 미국 선도 기업들과 보이지 않는 인적 네트워크를 깊게 공유하는 반면, 해외파 연구기술진이 없는 딥시크는 AI 기술 개발 네트워크에서 동떨어진 외톨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리콘 벨리에서 각광받는 형태의 기술 개발을 크게 의식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즉, 네트워크 외톨이이기 때문에 기존 주류의 기술 개발 형태와는 다른 새로운 접근접에 더 초점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GPU 수출 금지는 딥시크에게 더욱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자원 이동의 제한은 기술 개발에 부정적인 역할을 미친다. 홍콩과기대 쯩얀펑 교수 연구진의 연구에서는 중국의 구글 검색제한이 중국 기업의 기술 개발 방향을 바꿨다고 이야기한다. 구글을 통해서 해외에서 개발된 지식을 검색하고 습득할 기회가 줄었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자신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분야 위주로 기술을 개발할 수 밖에 없었고, 새로운 분야를 탐험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러한 논점은 연성 정보환경에서 예상되는 현상이다. 연성정보의 흐름이 끊기면 기술개발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정보 환경이 주로 경성정보로 이루어졌다면? 기술 개발에 필수적이라 여겨졌던 자원의 흐름이 끊겼을 때, 선도기업들과 인적 네트워크로 연결된 기업들은 해당 기술 개발에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선도기업들과 비슷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데 자원에서 불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알리바바나 텐센트를 보라. 그들의 AI모델 개발은 실제로 많이 늦춰졌다.
하지만 자원의 제한은 네트워크 외톨이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주류의 선도 기술과는 다른 형태의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네트워크 외톨이들에게는 시장에서 역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기회를 준 것이다.
딥시크는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이다.
미국의 GPU 수출 제한 정책이 성공적이기 어려운 이유는 AI 개발 환경이 반도체 개발이나 제약 개발 환경과는 달리 보다 코딩이라는 표준화된 그래서 정보의 이동이 쉬운 경성정보에 의존한다는 것에 기인한다. 오히려, 이러한 수출 제한 정책은 네트워크 외톨이가 빛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었다. 딥시크의 등장은 경성정보 환경과 자원의 제한이 만들어낸 환경에서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다.
무엇일 필요할까?
이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주는 시사점이 크다. 많은 한국 기업들도 토종 연구진을 키우기 보다는 해외에서 훈련된 완성형 인력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선도 기술 개발에 투자 중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방식의 전략적 인적 자원 개발은 연성 정보환경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전략이다. 다만, 표준화된 코딩을 기반한 IT 분야의 기술 개발 전략으로는 제한점이 있을 수 있다. 특히, 기존의 선도 기술을 답습하지 않은 파괴적인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오히려 제한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분야에서 파괴적인 혁신을 생성할 수 있는 역량을 쌓는 데에는 오히려 네트워크 외톨이를 키우는 것이 주효할 수 있다.
무엇을 해야할까? 우선 토종 인력을 키우는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다. 기술개발의 정부 지원를 돌이켜 봤을 때 해외 연구자들이 만든 벤처들에 대한 편향이 없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이는 재고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IT 분야의 혁신을 추구하는 벤처일수록 말이다.
국내 대학과 연구소에 대한 함의도 있을 수 있다. 정보환경이 점점 더 경성정보들로 변하고 있는 산업 현장에서 대학과 연구소가 토종 인력을 키울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학을 가야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지배적인 상황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IT 분야의 혁신을 추구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