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마법의 숟가락

바깥은 여름 중 '노찬성과 에반'김애란 작가

by 루나


저녁이 되면 창 앞에 전봇대의 불빛이 켜집니다.
이사 후 계속해서 보이는 환한 공간이 보입니다.
그 빛으로 어릴 때가 스르르 생각납니다.

김애란 작가의 작품의 밀도 있는 감정선은
저의 어린 시절의 시간의 흔적처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외할머니 댁에
자주 가서 살았습니다. 부모님이 맞벌이하셔서 기억조차 없을 때에 가 있기도 했었다고 얘기해 주십니다.

​초등학교 때도 방학만 되면 외갓집 가서 있었고요. 그래서 어릴 적 엄마에 대한 기억보다 외할머니의 기억이 많다는 걸 새삼 알았습니다.


할머니 댁에 누렁이 개가 있었는데
어느 날 새끼를 낳았습니다. 아롱다롱 눈도 안 뜬 애들이 꼬물거리는지 그 모습이 제가 생명을 대하는 태도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동네도 아이들은 많지 않았었는데 가끔 종이 인형으로 노는 동생 친구? 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그리웠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저는
공상을 많이 했습니다. 외할머니도 가게를 왔다 갔다 하시며 저를 챙겨주셨습니다.

​아빠는 제가 외갓집에 있는 게 안쓰럽다고
작은 언니 편에 책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기억에 뚜렷한 '소공녀'였습니다. 외로운 소공녀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새로 가져온' 톰소여의 모험'은 출판사가 달랐습니다.
가져온 언니에게 버럭 화를 내며
" 이거 아니라고 "
했습니다. 출판사 문제가 아니라
쌓였던 속상함을 언니에게 화풀이한 거였습니다.



크리스마스 날 할머니는 성당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원래 할머니는 장사 잘되게 해 달라고
굿도 하셨답니다. 잘 되어서 아플 때도 해봤더니
소용이 없더래요.

권유가 있어 성당다니시게 되었는데
몸도 낫고 마음의 평안도 얻게 되셨습니다.

"빨리 자라. 윤미야. 그래야 밤 미사 본다."
"지금 안 졸려, 할머니."

그렇게 한 치 앞도 가늠 못하는 대답을 하다
놀다 버틴 저는 그제야 졸리기 시작했습니다.


성당의 첫 기억은 졸면서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필터를 끼운 시야의 기억으로 마무리됩니다.
잠 안재우는 고문이 뭔지 쫌 알 것도 같은 그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신기한 마술이 있었습니다.
세 숟가락의 마법입니다.
분명 밥이 꽉 차 있는데 할머니는

"세 숟가락 남았다. 딱 세 숟가락"
한 숟가락 엄청 크게 뜨고 , 또 크으게 떠 먹여주시고,
"마지막이다. 다 먹었다. 다 먹었어."무조건

더 크게 먹으면
한 그릇 다 먹는 마법입니다.
할머니는 마법사였을지도 모릅니다.

목소리도 강건하시고 활기차신 분이셨습니다.

​마법의 연속은 배가 아플 때인데
꺼슬꺼슬한 손으로 배를 돌려서 마사지해주시면
아픈 게 스르르 사라집니다. 의사 선생님이 되시는 거죠.

감기 걸리면 생강 넣은 엿을 한 숟가락 뚝 넣어주시기도 했고요. 쌉쌀한 맛의 생강엿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과일도 가져다 챙겨주셨는데
1학년 1학기에 매일 일기장에 과일맛 찬양였습니다.
왜 다른 글감은 못 찾았지 모르겠네요. 저의 먹방의 한계였을까요.

​미스터리한 먹방 일기를 써서 이모랑 언니들이 한 소리씩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일기장에 왠 먹는 것만 쓰니."

​하루는 큰언니가 왔습니다. 언니가 업어주길 바랐습니다. 엄마 대신 큰언니가 해주길 굴뚝같이 바랬습니다. 근데 할머니가 업어주셨어요. 제가 떼를 부리자 저기 전봇대까지 가서 큰언니로 바꾼다는 거예요.


언니는 살짝 웃었습니다. 좀 이상하긴 했으나
저는 믿고 맡겼죠. 전봇대에 도착하니 이게 아니고 저쪽 거라고 했습니다. 두어 번 가니 할머니 댁에 도착했습니다.

어쩌면 어린 저를 속였을까요. 그러나
언니가 온 게 좋아서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할머니 댁의 무거운 솜이불을 덥고 꼭 자게 하십니다.
가위눌릴 듯하지만, 그 보송함과 까슬함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무거운 솜이불에 매일 같은 꿈을 꾼 적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정성스러운 이 이불 찾아보기도 힘듭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인가 미국에서 이모가 초청해서
이민을 가시게 되었어요.
저의 외갓집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마법의 숟가락이었습니다.
아마 빈 공기도 밥이 생겨나고 밥 짓는 냄새가 나고. 세 숟가락도 열 숟가락으로 만들어 내실 마법사였을지도 모릅니다.

​하늘나라로 가신 할머니 잘 계신지요.. 외갓집은 제 기억의 샘물 저장고입니다. 살아가면서 그 저장된 물을 퍼서 쓰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네가 네 얼굴을 본 시간보다 내가 네 얼굴을 본 시간이 길어.... 알고 있니?

노찬성과 에반 중에서 바깥은 여름 김애란



김애란 작가는 세상에서 사랑을 처음 알아가는 '찬성이와 강아지 에반 '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찬성은 에반을 위해 모은 돈을 다해 고치려 합니다. 그러나 에반의 아픔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 찬성은 옥죄는 마음을 뭐라 표현 못 합니다.

'용서'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찬성이가 선 데가 길이 아닌 살얼음판이 되는 양 어디선가 쩍쩍 금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저 한 단어로 감정을 말할 수 없는 아스라한 작품으로 가볍지 않고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사랑을 알게 된다는 건 슬픔을 배워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이 공존하는 고귀한 감정입니다.



그럼에도 바깥은 맹렬하게 돌아가는 여름입니다.
하지만 내면의 흔적과 기억을 소중히 여기며
꺼내기도 하며 봄인 듯 , 가을인 듯, 겨울인 듯
저는 지내고 있습니다.

때론 여름을 온전히 느끼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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