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와 큰 나를 만날 때
나의 어린 시절 학교 가기 전에 외할머니 댁에 거의 맡겨져 지냈다. 엄마의 부재가 나를 외로운 시간으로 보낸듯하다. 근처에 동생인데 친구같이 지낸 아이와 인형놀이, 소꿉놀이를 했다. 엄마가 없는 나는 한수 접고 지내는 관계였다. 내가 더 놀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종이 인형도 선물해 주었다.
"엄마가 빨리 오라고 했어." 하면서 놀이가 익어갈 때 판을 깼다.
그 시절에 엄마라는 부재가 나를 하염없이 작게 만들었다.
요즘엔 블로그와 브런치 스토리를 하고 있다. 온라인 속 보이는 미디어의 좋아요 와 이웃수가 있다. 주홍 글씨처럼 카운트되어 보인다.
이웃 수에 매달리지도 않지만 그냥 놔둘 수도 없다. 너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거인국에 가서 몇 천, 몇 만의 수를 보고 와서 중심잡기를 한다.넘사벽이다.
보통 하트를 누르면 답으로 하트가 오는데, 거인국 사람이 되면 반응조차도 어려운 존재다.
아는 것, 경험, 소유한 것이 많을 때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데 착각일 때도 많다. 내가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선택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걸리버 여행기처럼, 소인국,거인국을 다니며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가지나 중심에서만 바라보는 것에서 상호적인 눈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더불어 함께 갈 수 있는 돈독한 친구들이 있다면 외롭지 않게 외줄을 탈 수 있을 거다.
작게 느껴지는 고단함은 자연에서 쉼을 얻는다. 매일 아침 언덕길에서 시작한다.
자연은 그대로의 나를 반겨 맞는다.
"자연의 하루는 매우 평온한 것이며
인간의 게으름을 꾸짖지는 않는다."
월든 P133,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