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이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나의 삼십대는 책과 글이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십대 때는 친구였다. 이십 대는 뭐였을까, 생각해보니.. 인정하기 싫지만 그때는 ‘연애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던 때였다. 내 주변 모태솔로 몇명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연애라는 걸 안하고 살 수 있지? 외롭지도 않나?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알 것 같다. 한번이라도 연애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솔로인 시간을 못견뎌할 거다. 그러나 그 한 번의 경험을 아직 하지 않았기에 오래도록 혼자 지내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을거라는 걸.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사랑의 경험에서 알게 된 감정이니까.
그 사랑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 누구보다 나는 알았고, 그 외로움이 싫어서 혹은 때로는 나를 울리더라도 이 사랑이라는 감정의 맛을 알아버려서 자꾸만 누군가를 찾았던 것 같다. 그 때는 둘 중 하나였다. 연애를 하거나,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거나. 그런 나를 친구들은 장난삼아 놀리곤 했다. 00는 심장을 쉬게 놔두질 않는다며, 너의 마음의 방은 지치질 않는다며.
뜨겁던 연애는 1년, 1년반 남짓 기간 즈음 대개 끝이 났다. 좋다고 난리던 남자들은 1년이 다가올 즈음이면 초롱초롱하게 나를 바라보던 눈빛들이 점점 심드렁함, 무신경함으로 바뀌어갔다. 첫 번째 , 두 번 째, 세 번째..
‘그래, 너도 내게 질렸구나.’
몇 번의 연애로 알게 됐다. 남자들은 여우다. 믿을 게 못 된다. 한결같은 놈은 없다, 라고. 그러면서도 연애는 왜 계속 그렇게 또 했을까.
그러다 이십대 끝자락 만나게 된 지금의 남편. 1년 반을 못 넘기던 나의 연애들. 1년이 넘고, 2년이 넘고, 3년이 넘고 4년이 다 되어 가도 대체로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우린 결혼을 했고 어제는 우리의 결혼 7주년이었다.
하지만 한결같던 이 남자, 내게 한결같은 모습, 유통기한이 다른 남자보다 많이 길었을 뿐 유통기한이 아예 없지는 않나보다. 몇 년 전부터 결혼기념일을 까먹거나 신경을 덜 쓰는 것 같은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고 남편은 그제서야 그날 뭐하고 싶냐는 둥 갖고 싶은 거 없냐는 둥 물어보곤 했다. 결혼하니 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네 돈인데다 굳이 선물같은 건 안주고받아도 되지만 적어도 서로가 이 날을 기억은 했으면 좋겠고, 집에서든 밖에서든 비싼 거 아니더라도 같이 앉아서 맛있는 식사는 꼭 했으면 좋겠다. 일하느라, 애 키우느라 고생많다고 서로 따뜻한 말이라도 주고받으면서.
여차저차 시내 파스타집에 도착해 퇴근길에 급하게 산 꽃다발을 내미는데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고마우면서도, 남편과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음에도 마음 한 켠에 무언가 찝찝했다.
그 찝찝함은 내 마음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상대에게서만, 갈등에서만 무언가를 자꾸 찾으려하는데서 오는 찝찝함이 아니었을까.
상대방에 대한 불만, 서운함 때문에 가끔 외롭고, 괴롭고 짜증나곤 하지만 실은 나의, 내 내면의 어떤 부분이 해결되지 않기에 자꾸만 반복되는 문제일 것이다. 1년에 몇번은 서로 미친듯이 싸우기도 하는 우리. 하지만 대체로 다정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루에 여러번, 예쁘다는 말도 자주해주는 이 사람. 장점도 잘하는 부분도 분명 많은데도 내 안에는 불안이 늘 있는 것 같다.
'이 사랑은 식지 않아야 해. 당신은 늘 한결같아야해.' 하는 마음과 함께. 실은 나도 한결같은 사람은 아니면서도.
한 고딩 친구가 언젠가 자기랑 나, 또 다른 친구 이렇게 셋을 집어서 ‘우리는 애정결핍이 있잖아.’하고 말했던 게 갑자기 생각난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도, 한창 연애로 웃고 울고 할 때도, 나는 내가 애정이 결핍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상대방이 변한거야,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달라진 것처럼 태도가 바뀐 거잖아. 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래, 내가 애정이 결핍되었던 게 맞다치고, 그럼 어디서부터인걸까.
좋을 땐 좋고, 화기애애할 때는 화기애애했지만 대체로 자주 싸우고 큰소리가 오고가곤하던 집에서 자란 나. 엄마 아빠가 세심하게 마음을 어루만져주거나 하지는 않았더라도 이 정도면 그래도 잘 자란 것 같은데, 하는 변명하는 마음 같은 게 불쑥 나온다.
어디서부터 언제부터였나. 누군가가 나를 한결같이 사랑해줬으면 하고, 모든 걸 다 품어주듯이 대해주길 바라던 게. 마치 '엄마'처럼, '아빠'처럼.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지점을 찾아 거슬러올라가는 일도 버거운 일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나를 대하는 태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같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있는 그대로의 나를 한결같이 받아줬으면 하는 마음. 늘 사람에게 품었던 이 마음들. 이런 마음은, 이런 기대는 적어도 사람에게 하는 건 아니란 건 알겠다. 사람이란 존재는, 타인이라는 존재는 기대하고 의지하는 존재가 아니다. 차라리 사랑이 심플하다. 사랑하는 존재, 감사해하는 존재, 귀여워하는 존재다, 내게 있어 사람은.
남편에게, 또는 다른 어떤 누군가에게 늘 한결같은 사랑, 인정을 원하지만 그 한결같음이란 환상에 가까움을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지금껏 만나 본 남자들 중 남편이 그 중 제일 낫지만 이 사람도 결국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상대는 내게 사랑을 준다고 주지만 나는 그 누구의 사랑으로도 채워지지가 않았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 난 우물같은 마음. 그 구멍을 메꾸는 게 우선인지도 모르는 일인데 나는 계속해서 물을 채우려했구나. 상대를 통해 채우려했던 그 마음, 단 한번이라도 온전히 제대로 채워졌던가.
내가 나를 많이 사랑하지 못해서, 다른 누군가가, 그것도 가장 가까운 남편이라는 대상이 나를 제일 사랑하주길 바래서, 그의 사랑이 조금이라도 변한 것 같으면 불안해하고 슬퍼하는 나.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 봄날은 간다의 유명한 이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사람이 하는 사랑이니까, 그러니 당연히 변하는 것임을 상우는 몰랐나보다. 꼭 나처럼.
누군가 나를 서운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 때, 누군가 때문에 마음이 힘들 때, 오히려 내 마음을 들여다봐주고 싶다. 그렇게 갈구하던 사랑을, 내가 내게 먼저 주는 연습을, 해보고 싶다.
나의 사랑도 돌아보면 좋겠다. 남편을, 또 어떤 타인을 계산적으로, 머리로, 조금도 손해보지 않고, 상처받지 않을만큼의 마음만 주며 살고 있는 건 아니었을지.
나를, 누군가가 꼭 사랑해줘야할 대상이라고 얕게, 작게 만들지 말자.. 그냥 나는 나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할수도 있고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일 때, 나는 더 얼마나 자유로워질까.
너가 나를 사랑할까 안할까하고 내 마음의 키를 상대에게 주는 일이란 얼음 위를 걷는 것마냥 얼마나 불안한 일일까. 내 인생의 키, 내 마음의 키를 내가 잡고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을 내가 먼저 내게 주도록 노력하자. 살면서 잘 사랑하고 잘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연습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