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어진 Mar 13. 2024

언제나 레디!

풋살은 어렵다. 너무 어려워서 위축된다.

"악! 또 공 놓쳤다. 집중하자!"

"아, 방금은 패스할걸. 왜 이렇게 멍청하지?"

"벌써 얼굴 간지럽다. 아침인데도 햇빛이 너무 세네."

풋살을 할 때마다 드는 생각들이다. 


 풋살은 어렵다. 너무 어려워서 위축된다. 위축되다 못해 평소의 내가 아니게 된다. 괜히 왔나. 이제 슬 그만할 때가 됐나. 오늘도 풋살이라는 거인 앞에 선 나는 작아지고 만다.



 풋살은 나를 집중하게 한다. 성인 ADHD가 아닐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볼 정도로 집중력이 부족한 나를 말이다. 경기장에 들어서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온갖 잡음들이 꺼진다. 잠시라도 그 소리들에 귀 기울이는 순간 실수로 이어지기에 켜둘 수가 없다. 축구를 잘 하는 케이는 말했다. "언제나 레디!" 잠시도 방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언제 공이 올지 모르고, 언제 공을 빼앗길지 모른다. 그러므로 눈은 항상 공을 바라보고, 몸은 언제든 달려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평소 내 머리를 가득 채우던 잡념을, 내 마음을 가득 채우던 좋고 나쁜 감정들을 나도 모르게 까먹게 된다. 너무 중요한 것 같던 일도 두 시간 뛰고 나면 별게 아니게 된다. 분명 별일이었는데? 하게 만든다. 마치 스트레스 해소제나 집중력 약을 먹고 난 것 같은 상태가 된달까? 



 풋살은 나를 신속히 결정하게 한다. 프로우유부단러인 나를 말이다. 얼마나 우유부단 한지, 음식 메뉴 하나 정할 때에도 한참이 걸리는 나를 말이다. 풋살은 매 순간이 선택이다. 공이 오면 패스를 줄지, 드리블을 할지, 슛을 찰지 선택해야 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만약 패스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뒤로 뺄지, 반대로 전환 할지, 앞으로 줄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심지어는 바로 할지, 공을 한 번 터치해서 안정감 있게 줄 건지까지 선택해야 한다. 머리가 터진다. 게다가 빠른 시간 안에 판단을 마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어느새 상대팀 선수가 공을 빼앗아가고 만다. 평소 느긋하게 이것저것 고민해 보고 선택하는 나에게 이 과정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지 느껴지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선택이 옳았을 때, 그 모든 스트레스가 쾌감과 성취감으로 바뀐다. 비록 자주 잘못된 선택을 하지만 그런 만큼 이따금 옳은 선택을 했을 때 기쁨이 배가 된다. 특히 적절한 패스로 골을 어시스트했을 때는 그 장면이 꿈에도 나온다. 아,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다.



 풋살은 자꾸만 사과하게 만든다. 죄송합니다. 미안해요. 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끼치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를 말이다. 어떤 운동은 실수를 하면 혼자 피해를 본다. 하지만 풋살은 다르다. 한 번의 실수가 팀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럴 때 팀원들이 욕을 하면 차라리 다행이다. 진짜 무서운 것은 속상한 표정을 보는 것이다. 겉으로는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아쉬움, 혹은 원망의 마음은 죄책감을 두 배로 키운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그랬지. 멍 때리지 말 걸. 좀만 더 침착할걸.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나만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나를 안도하게 한다. 우리는 서로 민폐를 끼친다. 죄송하지만 이미 실수해 버린걸요? 하며 다음엔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 실수한 사람이 속상할까 걱정되는 마음에 애정을 담아 격려해 주기도 한다. 실수해도 괜찮다. 우리는 한 팀이다.  



 풋살은 강박을 포기하게 한다. 어린 시절에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도 모를 정도로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햇빛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야외 활동을 할 때 각종 자외선 차단 용품을 꼭 활용한다. 선크림을 듬뿍 바르는 것은 기본이고, 팔 토시 선 캡 등 온갖 유난에 유난을 다 떨어야 야외활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풋살을 할 때는 그 모든 것이 다 예외다. 햇빛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선크림을 잔뜩 바르는 정도이다. 다른 것들은 전부 풋살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풋살은 피부가 상하는 것을 감수하게 한다.


 하지만 여름 날 뙤약볕 속에서 풋살을 하다 보면 오랜만에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얼굴이 빨갛게 타오르고 슬슬 간지러워지는 걸 느끼면서도 집에 도저히 들어갈 수 없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풋살을 하지 않았다면 다시는 느끼지 못했을 그리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풋살은 어렵다. 너무 어려워서 위축된다. 위축되다 못해 평소의 내가 아니게 된다. 나와는 도무지 맞지 않는 운동이다. 하지만 너무 좋다. 나와 달라서 좋고, 내가 내가 아니게 해주어서 좋다. 그래서 오늘도 괜히 왔나. 이제 슬 그만할 때가 됐나. 생각하다가도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못하는 만큼 더 배워야지!" 

"숨이 턱 끝까지 차도록 부지런히 뛰어야지!"  

"다리에 쥐 날 때까지 공을 뻥 차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혼자만 들릴 정도로 작게 외친다.

언제나 레디!

작가의 이전글 소망의 거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