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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Mar 09. 2024

소망의 거울

 며칠 전 일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어떤 분이 소망의 거울에 대한 글을 썼다. 해리 포터에 나온 그 소망의 거울 말이다. 해리 포터를 봤다면 누구나 생생하게 떠올릴 것이다. 소망의 거울 앞에서 엄마, 아빠, 해리 세 가족이 함께 서 있는 그 장면을. 그 글에 영감을 받아 내 소망의 거울을 그려본다. 만약 내가 소망의 거울 앞에 서면 어떤 모습이 나타날까? 누구와 함께 있고,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가장 먼저, 엄마, 아빠, 언니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그려본다. 해리의 거울처럼. 아주 마음에 든다. 떠나보낸 지 3년이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우리 엄마. 엄마의 56, 57, 58살의 모습은 본 적이 없기에 엄마는 3년 전 모습 그대로 나타난다. 나이 든 엄마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본다. 조금 더 주름이 많아졌으려나.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거울 속 아빠는 건강하다. 뱃살이 없고, 표정도 아주 밝다.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의 모습도 물론 좋지만, 거울 속 아빠는 조금 더 좋은 모습이다. 아빠가 얼른 건강을 회복해서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셨으면 좋겠다. 아빠의 건강만큼 소원을 빌 기회가 생겼을 때 일등으로 생각나는 것도 없기에. 가장 먼저 우리 가족을 그리다니. 지나고 보니 알겠다. 4인 가족의 모습은 누구나 소망하는 안락한 이미지의 전형이지만, 아무나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이번에는 혼자 서 있는 모습을 그려본다. 나쁘지 않다. 예전에는 반드시 가정을 이루리라 생각했는데 이젠 그 생각도 많이 변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나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이기적인 내가 과연 완벽한 타인을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멋모를 때 결혼하지 않으면 노처녀가 되기 십상이라던데. 하긴, 예전이었다면 이미 노처녀가 되고도 남을 나이이다.


 혼자 있는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할머니가 되었는지 주름이 자글하다. 머리도 온통 희었다. 염색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은백색의 머리칼이 멋스럽게 보인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장소는 어디지? 창밖으로 파도가 치는 것을 보니 바다 근처인가? 이왕이면 겨울이 없이 사계절이 따뜻한 곳이면 좋겠는데. 그러면 지중해 근처, 그래 이탈리아가 좋겠다. 책상 위에는 샐러드와 견과류가 놓여있다. 커피도 있다. 노트북 앞에 앉아서 글을 쓴다. 귓가에는 연필이 꽂혀 있다. 부드러운 음악이 얼굴에 그려진다.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있지 않다. 방해할 수 있는 것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은은한 미풍과 오전의 희미한 햇빛뿐이다. 아마도 나는 박완서 씨 같은 노련한 여류 작가가 되었나 보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는 모습은 그려지지가 않는다. 뿌옇다. 실루엣도, 어떠한 형상도 보이지 않는다. 내 소망이 반영되지 않아서 그런가. 아무리 그래도 힌트라도 좀 주시지. 적고 보니 놀랍다. 2024년 3월의 나는 이런 모습을 소망하는구나. 오늘도 쓰면서 내 마음을 알아간다. 변덕쟁이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기에, 언제 또 소망의 거울 속 내 모습이 달라질지 모른다. 이탈리아도, 노트북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버리고 2인 가족 혹은 3~4인 가족의 모습으로 서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나는 또 오늘처럼, 지금의 나는 이런 모습을 바라는구나 해야지. 그렇게 내 소망을 하나 더 알아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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