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어진 Mar 07. 2024

네 마음 가는 대로 해.

엄마가 내게 그래주셨던 것처럼. 사랑을 담아.

 네 마음 가는 대로 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던 사람, 우리 엄마가 자주 하시던 말이기도 하다. 


 요즘 이 말을 제일 해주고 싶은 사람은 아빠다.

 아빠는 큰 병을 앓고 있다. 그래서 안 되는 것이 많다. 설탕이 가득 들은 믹스커피는 하루에 한 잔 이상 마시면 안 된다. 맵고 짠 음식은 절대 피해야 한다. 먹고 있는 약 때문에 밤 12시 이후에는 공복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외에도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되도록 밖에 나가면 안 되고, 병원에 갈 땐 꼭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요즘 아빠는 내 눈치를 많이 보신다. 몸에 좋지 않은 커피를 마실 때마다 '아빠 커피 한 잔 마셔도 되나?'하고 허락을 받으신다.(그럼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안돼!!라고 한다.) 내가 "오늘 뭐 먹었어요?"라고 물어보면, "유진이가 안 좋아할 것 같아서 별로 말해주고 싶지 않은데." 하신다. 새벽에 배가 고파서 바나나를 먹을 때는 부엌에서 소리 없이 쓱 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신다. 


 아빠께 마음 가는 대로 하시라 말하고 싶다. 믹스커피 같이 몸에 좋지 않은 커피를, 순댓국, 짬뽕, 라면 같이 맵고 짠 음식을 당길 때마다 먹으시라 하고 싶다. 새벽에 일어나 바나나를 먹으실 때는 약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먹으시라 하고 싶다. 마스크 쓰는 것을 많이 답답해하는 아빠께 미세먼지나 병원과 상관없이 마스크를 벗고 생활하시라 하고 싶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건율이 마음대로 해.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20명 이상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려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특히 학기 초라서 그런지 안 되는 것들을 많이 알려주는 요즘이다. 학교 폭력 안 돼. 복도에서 뛰면 안 돼. 칼 들고 오면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온통 안 돼 뿐인 하루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은 습관적으로 내게 허락을 받는다. "선생님 이거 가위로 잘라도 돼요?"라든지 "선생님 딸기 하나 더 먹어도 돼요?"라든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질문을 하는 아이도 있고, 과거에 혼났던 기억들로 인해 허락부터 받는 습관이 생긴 아이들도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네 마음대로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네 생각에 따라 가위로 자유롭게 잘라보라고 하고 싶다. 딸기 하나, 아니 먹고 싶은 만큼 많이 많이 먹으라고 하고 싶다. 복도에서 뛰면 좀 어떤가. 피구장에 축구공 좀 들고 가면 어떤가. 수업 시간에 짝꿍이랑 좀 속닥거리면 어떤가. 


 진짜 안 되는 것과 적당히 안 되는 것과 사실은 안 되는 게 아닌 것의 경계를 정하는 일은 어렵다. 


  내 마음대로 하자!

 나 자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스스로에게 엄격한 나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 특히 이번 주는 개학 주간이다. 두 달 동안 평화로운 방학 생활을 하다 갑자기 출근을 하려니 유달리 몸이 피로하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던 운동과 독서가 귀찮아진다. 늘 절제하려고 노력하던 당 섭취가 평소보다 절실해진다. 선반에 놓인 초콜릿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하지만 운동과 식단 관리를 계속해야 한다. 체중과 피부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읽고 있던 셰익스피어 희극도 빨리 읽어야 한다. 단 하루도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나 자신에게 이번 주는 개학 주간이니까 하루 정도는 운동을 쉬어도 돼. 초콜릿 한 개쯤은 먹어도 돼. 피부에 좋지 않은 우유가 들어간 라테도 한 번쯤은 마셔도 돼. 오늘 하루는 피곤하니까 책 안 읽어도 돼.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오늘도 결국 초콜릿으로 향하던 손을 거두고 닭가슴살을 뜯는다. 홈트를 끝내고 셰익스피어를 펼친다.


  '안 돼'와 '네 마음 가는 대로 해'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는 건 어렵다. 사랑하는 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하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무섭다. 건강을 해칠까 봐. 질서가 망가지고 공동체 생활에 피해를 줄까 봐. 스스로 나태해질까 봐. "삶은 우리가 내린 결정의 총합이다."라는 말이 있다. 오늘 결정한 "안 돼."가 모이고 쌓여서 내일의 건강과 내일의 안전과 내일의 나를 만들어 줄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을 떨치기가 힘들다.


그러나 가끔은

아빠 마음 대로 하세요. 

건율이 마음대로 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

고 말해주는 내가 되고 싶다. 


엄마가 내게 그래주셨던 것처럼. 사랑을 담아. 

작가의 이전글 케이는 항상 괜찮다고 말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