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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Mar 05. 2024

케이는 항상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괜찮지?' 생각한다. 

 케이는 항상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괜찮지?' 생각한다. 나였다면 절대 괜찮지 않은 일도 케이는 괜찮다고 말한다. 


 케이는 쉽사리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다. 식당 주인이 퉁명스럽게 주차를 거기하면 안 된다고 말해도 웃으면서 그럼 다시 할게요~라고 한다. 택시 기사님이 짜증 내며 영수증은 안 나온다고 말해도 웃으면서 아 그래요?라고 한다. 누구나 기분 나쁠 법한 상황에서도 케이는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다. 케이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는 건 어떤 게 있을까?


 그렇다고 쉽사리 기분이 좋아지지도 않는다. 내가 아무리 칭찬해도 케이는 좋은 내색이 없다. 자칭 타칭 칭찬 머신인 나의 칭찬 공격에도 별 반응이 없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케이가 던지는 개그에 빵! 터져 박장 대소를 해도 케이는 좋은 내색이 없다. 다른 말로 돌리거나 그냥 그 장소를 떠버린다. 자칭 타칭 리액션 장인인 나의 웃음에 별 반응이 없는 사람은 정말 흔치 않은데. 케이를 기쁘게 할 수 있는 건 어떤 게 있을까? 


 내가 케이를 처음 본 날은 케이가 나를 네 번째 본 날이었다. 케이는 축구를 하고 있었다. 공격을 잘 했고 패스도 잘 했다. 그런데 수비까지 잘했다.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냥 그뿐이었다. 이름도 몰랐다. 축구가 끝나고 케이랑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케이는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직업이 뭐예요?

축구 재밌어요?

어디 살아요?

왜 늘 같이 오던 X랑은 안 와요?


그리고서는 

오래 만났어요?

라고 물었다.


나는 

아니요.

라고 답했다. 


케이는 

그럼 됐네요. 

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내가 처음 케이를 보고, 케이가 나를 네 번째 본 날도 케이는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케이는 내가 6시간이 넘게 답장을 하지 않아도 "낮잠 잤어?"라고만 한다. 전화를 다섯 번이나 받지 않고, 심지어 콜백을 하지 않아도 '얘는 전화를 별로 안 좋아하나 보네?'라고만 혼자 생각하고 나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약속을 세 번이나 미뤄도 "그럼 다음에 보자~"라고만 한다.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도 '나를 한 번에 좋아할 수는 없지. 나를 더 보여줘야겠다.'라고 생각한다. X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아도 '어차피 내가 더 멋있으니까 아무 상관없다.'라고 생각한다.


 케이는 어떤 날 내가 좋다고 말했다. 또 어떤 날에는 만나보자고 말했다. 또 또 어떤 날에는 이제는 네 마음을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웬만한 일은 다 괜찮지 않은 사람이기에, 웬만한 일에 쉽게 기분이 나빠지고, 웬만한 일에 쉽게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기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케이는 항상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괜찮지?' 생각한다. 나였다면 절대 괜찮지 않은 일도 케이는 괜찮다고 말한다. 나는 케이가 괜찮지 않은 게 궁금해서 괜히 짓궂은 질문을 한다. 어떻게 하면 케이 기분이 달라질 수 있는지, 어떤 것이 케이를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하다. 


 케이는 "네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라고 말했다. "멋진 사람, 잘생긴 사람, 웃긴 사람 등 다 좋지만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라고 했다. 그런 케이에게 "나도 네가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상대를 좋아하게 되는 건 무서운 일이다. 케이가 자꾸자꾸 좋아지는 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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