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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년째 13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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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Dec 02. 2024

첫눈과 맨발

<2년째 13살> (7) 첫눈과 맨발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눈이 왔습니다! 11월에 보기 드물 정도로 펑펑!

학교에도 눈이 펑펑! 왔고요, 덩달아 아이들도 눈싸움 생각에 눈이 팽팽! 돌더라고요.


놀기 좋게 쌓인 눈 덕분에 아이들은 너도나도 잔뜩 신이 났어요. 나가서 온갖 눈 놀이를 다 하더라고요. 눈싸움, 눈썰매, 눈사람 만들기 등등. 


평소 조용하고 무기력하던 6학년이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오죽하면 우리 반 회장님까지요.

방과 후였습니다. 아이들을 모두 하교시키고 업무에 몰두하고 있는데 회장님이 앞문을 벌컥 열어젖혔습니다.

"쌔앰~"하고 말이죠.  

평소 침착하고 얌전하기만 한 그 아이가 웬일로 신이 나서 달려왔더라고요. 누가 봐도 방금까지 눈싸움을 하다 온 모습으로요. 머리는 축축, 얼굴은 추위 때문에 빨개져 있는.. 그런 상태? 


제 시선은 곧장 아래로 향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문제는 그 아이의 발! 발이 너무 허전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날씨,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보이면 안 되는 살구색의 발가락이! 왜 여기서 나와~~~~


눈과 물기가 뒤섞여 새빨개진 맨 발을 보자 화가 절로 났습니다. 얼굴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빠직을 새겨 넣었을 테죠.

"지금 이 날씨에 맨발인 거야?"

아이는 제가 화를 내든지 말든지, 싱긋 웃으며 답했습니다.

"괜찮아요. 히히."

"아니 왜 너마저.."

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뒤이어서 하고 싶은 말은 "멀쩡하던 너마저 왜... 대체 왜... 이 날씨에 맨발로 눈 밭을 뒹구르고 있는 거냐고!!!" 였지만요. 


회장님은 제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뒤돌아서 친구들한테 가더라고요. 애처롭게 남아서 분한 건 저뿐이었어요. (맨발 자랑하러 왔던 거였어?)


눈에게는 대체 어떤 힘이 있는 걸까요. 어떤 힘이 있길래 차분하던 아이를 맨발로 뛰어놀게 만드는 걸까요?

중2보다 시큰둥하다는 초6의 콧구멍에서 설렘과 흥분의 김을 보았다는 것이 신기하고 부러운 11월의 첫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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