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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3년째 13살

뒤숭숭한 마음을 만드는 것도 풀어주는 것도 결국 13살

<2년째 13살>

by 이어진


오랜만에 아이들에게 화를 냈어요.

평소 화를 내야하는 상황에서도 화가 잘 나지 않아서, 일부러 화가 난 척 연기를 하기도 하는데

이번 만큼은 진심으로 화가 나더라구요.


이유는 분리배출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쓰레기가 분리수거함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거든요.

종이류에 반쯤 먹은 초콜릿과 껍질이 들어가 있고,

비닐류에 플라스틱 블럭이 들어가 있는...

그야말로 아비규환.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고 부르던가요. 쓰레기 하나가 아무렇게나 버려져있으면, 그게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된다고 하는 그 이론...

생태환경교육을 뼈 빠지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잡아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그 모습을 보니

저를 붙들고 있는 인내의 끈이 우직끈 끊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가 이거 여기에 버렸어요? 이러면 북극곰이 운다고 같이 공부하지 않았나요?"

저는 기어이 소리를 질렀고, 짜증을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라는 놈이 푸슉 빠져 나가고 나니 비로소 현실자각타임이 오더라고요.

이게 뭐라고.

애들이라서 그런 건데.

그냥 좋게 말할 걸.

아이들에게 한 번이라도 화를 내본 적 있으시다면 제 감정이 이해가 가실 것 같아요.


얼굴이 붉어지도록 화를 내버리고 만

저 자신이 부끄러워서 또다시 얼굴이 붉어지는

토마토 무한 굴레.


그렇게 한동안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앉아서 끔찍한 현자타임을 만끽하는 동안

작은 쓰레기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않을 것 같은 예쁘고 착한 아이가 다가왔어요.


"선생님 이거요."

사르르 웃음이 나오는 눈웃음을 가진 아이가 손을 뻗어 제게 쪽지 하나를 건내었습니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선생님 죄송해요. 아까 선생님 기분이 안 좋아 보이셔서 사과의 편지 드려요.

정말 정말 죄송하고 기분 푸시고 다시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주세요.

다시 한 번 죄송해요ㅠㅠ

분리수거 잘할게요.



쪽지를 읽으니 더더욱 죄책감이 몰려왔어요.

바로 잡을 건 바로 잡더라도 감정적으로 화내어서는 안 되는 건데 말이죠.

또 그러면서도 이렇게 선생님 감정을 위해

작지만 절대 작지 않은 쪽지를 써온

아이의 마음이 너무 고맙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사르르 마음이 녹아내리더라구요.


뒤숭숭한 마음을 만드는 것도, 풀어주는 것도 결국 13살 아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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