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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3년째 13살

너무 고맙고 너무 귀찮았던 하루

by 이어진


새 학기 첫날이었습니다.

“선생님한테 궁금한 거 물어보세요~”

“뭐든 물어봐도 돼요?”

“그럼요~ 하지만 대답은 하고 싶은 것만 해줄 거예요^^”

“아 뭐예요~”

야유하는 아이들 틈에서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해요?”

“아 음식 얘기 또 재미있죠~ 선생님은 고민 없이 바로 대답할 수 있어요.”

혹시 마라탕? 치킨? 탕후루? 아이들의 수군수군 대는 목소리들 사이로 답했습니다.

“고구마를 제일 좋아해요. 하루에 4개씩 먹을 정도로 말이죠. 매일 먹어도 질리지가 않아요. 여러분도 그런 음식 한 가지씩 있죠?”

“네에? 고구마요?”

“큭큭. 다들 깜짝 놀라네. 선생님은 고구마의 그 달큼함과 퍽퍽함이 너무 좋더라고요. 자 다음 질문! 또 궁금한 거! “

“선생님 결혼했어요?”



한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13살들과 저는 한 뼘만큼 가까워졌고, 첫날의 대화는 기억에서 지워졌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많은 13살들은 주로 급식을 먹으러 학교에 오는데요, 그날도 13살들은 학교에 오자마자 식단표를 확인했습니다. 그중 한 남학생이 아주 기쁜 목소리로 제게 달려왔습니다.

“선생님! 오늘 급식에 고구마 나와요!!”

급식을 먹으러 출근하는 저는 이미 식단표 스캔을 마친 터라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마음이 귀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모르는 척 답했습니다.

“와 진짜? 너무 좋다~“

그 아이와 저는 해맑게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몇 분쯤 흘렀을까요. 또 다른 아이가 왔습니다.

“선생님 오늘 고구마 그라탕 나온대요! 선생님 고구마 좋아하시잖아요!”

“우와 그걸 기억해? 선생님이 딱 한 번 말했는데~ 감동이다.”

“헤헤”

또 다른 아이와 저는 해맑게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몇 분쯤 흘렀을까요. 또 다른 아이가 왔고요, 또 다른 아이가 왔으며, 또 다른 아이가 왔습니다.

“선생님 오늘 고구마.. “

“어 아까 다른 친구가 말해줬어.”

“선생님 그거 아세요? 오늘 급식에 고구…”

“알아.”

으아. 이제 그만…!!!!!


좋아하는 음식 한 번 잘못 말했다가 온종일 시달려야 했던 하루… 너무 고맙고 너무 귀찮았던 날의 기록입니다. 고구마의 인기가 마이너 했기에 망정이지,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했으면 정말이지 큰일 날 뻔했습니다. 다음에 또 고구마가 나오면 그날은 아침부터 제가 선수를 쳐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어머~ 오늘 선생님이 좋아하는 고구마 나오네~“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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