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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3년째 13살

복잡하게 좋은 아이

by 이어진


세상에 나쁘기만 한 사람은 없다고. 모든 인간은 다들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 신형철 평론가의 책이었던 것 같아요. 그 문장이 어찌나 인상깊었는지, 책을 읽은지 6개월이 더 지난 지금도 종종 고개를 끄덕이곤 합니다.


며칠 전에는 우리 반 은결이를 보면서 이 문장을 떠올랐는데요. 은결이는 분노조절 장애, ADHD, 학습장애 등으로 이미 학교에서 유명한 아이였습니다. 저학년 때부터 워낙 활발히 활동(?)한 아이였기에 13살이 된 지금은 아이에 대한 데이터가 많이 쌓인 상태였어요. 화가 나면 자해를 한다던지, 친구의 머리를 쥐어뜯는다던지 하는 과거의 행적들 말이죠. 그런 정보가 있으면 아이를 더 깊이 알고, 보다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점은 잘 소문이 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무리 은결이라 하더라도 6년동안 한 번쯤은 좋은 행동을 했을텐데 말이죠. 소문은 늘 안 좋은 것들만 콕콕 골라서 나는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고,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괜히 제가 다 억울한 일이기도 합니다.





벚꽃이 잔뜩 핀 4월의 어느 아침이었습니다. 은결이가 축축하게 젖은 머리로 등교를 했습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말이죠. 사실 못 본 척 할 수 있었고, 또 그것이 바쁜 저에게 편한 일이지만, 스몰토크라도 하자는 마음에 다정히 물었습니다. 평소 제 말투에 스윗함을 두 스푼이나 더 넣어서 말이죠.

“어머~ 은결아~ 머리가 왜 이렇게 젖어있어?^^”

하지만 은결이는 쌀쌀맞게 답했습니다. 제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말이죠.

“신경 쓸 거 없어요.”


아오…

그 말을 듣자마자 빠직 하고 열받음이 밀려왔지만 심호흡을 후하후하 하며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잔소리 해봤자 뭐하겠어. 어른인 내가 참자. 이런 마음으로요. 제가 평소보다 특별히 더 다정하게 물었기에 더 부글부글 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6교시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은결이의 머리는 바짝 말랐고요. 저는 아이들을 끌고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몇몇 활동을 하고 자유시간을 주기 위해서였죠.

“야~ 날도 좋은데 10분 자유시간! 선생님한테는 오지 말고 네들끼리 놀아라~”

“와~!!!”

아이들은 운동장을 질주하며 그 시절에만 보일 수 있는 에너지를 잔뜩 내뿜으며 봄을 즐겼습니다.


‘허허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며 제법 안온한 교사인 척을 하고 있는데 은결이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쌤.”

“자유시간인데 가서 놀지 왜 왔어 은결아.”

“이거 드리려고요.”

그러면서 은결이는 손바닥 위에 가지런히 올려둔 벚꽃을 보여주었습니다.


‘얘가 웬일이야? 아까 그 새침이 맞아?‘

9번 못 해주다가도 1번 잘해주면 감동을 받는다는 말이 정말일까요.

“고마워 은결아. 선생님 감동이다~”

제 말에 은결이는 제법 젠틀하게 답했습니다. 두 눈을 조금 반짝인 것도 같았어요.

“하. 하. 하. 꽃 선물은 원래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지요.“


저 아이가 악명 높기로 유명한 그 녀석이 맞나. 오늘 아침에 새초롬하던 그 녀석이 맞나. 역시 모든 사람은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는 신형철 작가님의 그 말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또 한편으론 우리 은결이가 이런 면이 있다는 것을 널리 널리 알려야겠다는 다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을 적어봅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여러분! 은결이는 4월의 벚꽃을 담임 선생님께 건네는 제법 젠틀한 녀석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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