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말과 행동은 주로 과열된 마음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문제의 발단은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5월 15일 아침 8시 30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불 꺼진 교실 문을 여는데 웬 폭죽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어요?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
평소처럼 불 꺼진 교실에는 평소와 달리 20명 아이들이 저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구마색 풍선과 고구마 맛 과자, 빵 등등과 함께 말이죠.
"어머.. 얘들아..."
별안간 코끝이 찡해진 저는 감격에 겨워 말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7번의 스승의 날을 맞이했지만 이렇게나 진심으로 준비된 서프라이즈 파티는 처음이었으니까요. 덕분에 코에서는 김이 나오고, 심장박동은 요동을 쳤으며, 아이들이 평소보다 예뻐 보이기 시작했어요. 요컨대 흥분을 했던 것이죠.
섣부른 말과 행동은 주로 과열된 마음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그날의 저처럼 말이죠.
"얘들아! 너네 20살 되면 선생님이 보답으로 술 사줄게!"
저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너무도 가볍게 내뱉었습니다. 그저 맛있는 간식 하나씩 쥐어주면 될 것을, 무슨 그런 말을 했을까요.
가볍게 뱉은 약속은 기억력이 좋은 몇몇 아이들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워졌습니다.
스승의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난 11월, 수업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 저희 20살 때 만나기로 한 거요, 정확히 몇 월 며칠 몇 시에 만나는 거예요?"
"어.. 2032년 5월 15일 5시 15분에 만날까?"
"와 좋아요! 어디서요?"
"음... 우리 학교 교문?"
"정문이요? 후문이요?"
이..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저는 "정문?"하고 답했습니다.
"근데 지금 학급 수가 엄청 줄어드는데 우리 학교 없어지면 어떡해요? 그럼 어디서 만나요?"
집요하리만치 아이들은 진심이었습니다. 저는 난처해하며 답했습니다.
"학교가 없어지면.. 학교가 있던 터에서 만나면 되지."
"아~ 그럼 되겠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공책에 날짜, 장소, 시간을 메모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천으로 된 필통에 네임펜으로 약속 시간을 기록하기도 했어요.
아.. 놔.. 정말 어쩌면 좋죠. 일이 커질 대로 커졌습니다.
7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약속을 과연 몇 명이나 기억할까요? 한 명이라도 나타나긴 할까요? 아니 한 명이라도 오면 어쩌죠? 서로를 알아볼 수는 있을까요? 시커먼 어른이 된 녀석들과 무슨 대화를 주고받아야 할까요? 부장님은 계산만 하고 빠져줘야 하듯, 저역시 그래야겠죠?
아무쪼록 함부로 뱉은 말에 한숨만 푹푹 쉬는 오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