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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긴 적 없지만 진 적도 없어

by 이어진

토끼와 거북이는 오래된 앙숙이에요.

<토끼와 거북이>를 읽은 친구라면

<별주부전>의 줄거리를 아는 친구라면

둘이 아주 먼 옛날부터 서로 싸우고, 속이는 사이였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예요.




어느 날 토끼와 거북이는 달리기 시합을 하기로 했어요. 거북이는 열심히 훈련을 했죠. 하지만 달리기가 빠른 토끼를 도저히 이겨낼 재간이 없었어요.

"토끼는 저렇게 빠른데! 난 왜 이렇게 느린 거야?"

거북이는 속상했어요.


거북이는 토끼를 이기는 방법을 찾기 위해 도서관에 갔어요. 도서관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혜들이 모여있거든요.

똑똑한 올빼미 선생님이 <토끼와 거북이>를 추천해 줬어요.

"이 책을 읽어보렴. 토끼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나와있단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거북이는 책을 읽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달리고 있는 토끼를 잠재울 수 있을까?"


거북이는 졸음이 몰려오는 순간을 떠올려보았어요.

엄마의 포근한 품에 안겨 있을 때 졸렸고

아빠의 등껍질 위에 올라탄 채로 먼 길을 갈 때도 졸렸어요.

그리고 또...

모래 목욕을 마치고 나왔을 때도 졸렸어요.


"그렇지! 좋은 생각이야!"

거북이는 햇빛에 바짝 마른 해수욕장의 모래를 떠올렸어요. 토끼가 달릴 트랙 위에 모래를 뿌려놓으면 틀림없이 토끼도 졸음이 몰려올 거예요!


하지만 혼자는 어려워요. 거북이는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개미군단을 찾아갔어요.

"개미들아, 내 부탁을 들어주겠니?"

수백 마리의 개미들이 답했어요.

"무엇을 도와줄까?"

"나를 위해 모래를 옮겨주라."

개미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그래 좋아!"


영차! 영차!

개미들은 줄을 맞춰 한 줄로, 두 줄로 움직였어요. 덕분에 모래는 순식간에 토끼의 트랙 위로 옮겨졌어요. 이게 다 부지런한 개미들 덕분이에요. 개미들은 큰 물건을 들 수는 없어도, 작은 물건이라면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 잘 옮기니까요.


모든 준비가 끝났어요.

땅!

경기가 시작되었어요. 달리기가 느린 거북이는 토끼에게 뒤처졌지만 걱정하지 않았어요. 모래가 있으니까요.

앗, 저기 토끼가 모래를 밟기 시작했어요. 거북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토끼를 지켜봤어요.


아뿔싸! 큰일 났어요!

토끼가 모래 목욕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뛰고 있지 뭐예요? 아니, 오히려 발걸음이 더 경쾌해진 것 같았어요.


거북이는 그제야 깨달았어요. 모래 목욕만 하면 잠이 솔솔 왔던 것은 자신이 물에서 사는 동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땅에서 사는 토끼에게 모래는 너무 익숙한 것이라 오히려 더 잘 뛸 수 있다는 것을요.


거북이는 또다시 지고 말았어요.

"이번에도 졌어! 도대체 난 잘하는 게 뭐야? 올빼미는 똑똑하고, 개미는 물건을 잘 옮기는데 도대체 왜 난 이모양이냐고!"


거북이는 울상이 되어 도서관으로 향했어요.

"표정이 좋지 않네요. 혹시 또 토끼에게 졌나요?"

올빼미 선생님이 거북이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어요.

"네! 또 지고 말았어요. 전 정말 구제불능인가 봐요."

그러자 올빼미 선생님이 이번에는 다른 책을 건넸어요. 그 책에는 <별주부전>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이 책에는 정말로 토끼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나와있어요."

"정말이에요?"

"그럼 정말이고 말고요."


거북이는 단숨에 <별주부전>을 다 읽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토끼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나와있지 않았어요. 두 번 세 번 더 읽어보아도 결과는 똑같았어요. 토끼의 잔꾀에 속아 넘어가는 거북이가 안타까울 뿐이었죠.


하는 수 없이 거북이는 올빼미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별주부전>에는 토끼를 이길 방법이 나와있지 않던 걸요?"

그러자 올빼미 선생님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어요.

"그럴 리가요. 그 책엔 분명히 나와있답니다?"

"네? 어디예요? 제가 몇 번이나 읽어도 달리기 시합하는 이야기는 없던걸요?"


올빼미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어요.

"토끼가 바닷 속 궁궐을 갈 때 어떻게 갔죠?"

"음. 거북이 등에 타고 갔어요."

"맞아요. 육지에 놓고 온 간을 찾으러 갈 때는요?"

"토끼는 수영을 못하니까.. 그때도 마찬가지로 거북이 등에 타고 갔어요."


올빼미 선생님은 정답이라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는 따뜻한 목소리로 한 번 더 물었습니다.

"달리기 시합을 꼭 땅 위에서만 하라는 법 있나요?"

"네? 그 말씀은?"

"토끼를 이기려면 땅 위가 아닌, 물속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면 되는 거예요."

"!!!!"

거북이는 드디어 방법을 알았어요. 토끼를 이기는 방법 말이에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죠.

거북이는 이미 이긴 것만 같았어요. 수영 시합을 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에요.


그렇지! 나는 수영을 잘하지!

그건 토끼도, 올빼미도, 개미도 못하는 일이야!

거북이는 웃음이 나왔어요. 어깨가 절로 으쓱했고요.


올빼미 선생님이 그런 거북이를 바라보며 물었어요.

"토끼에게 수영 시합을 하자고 할 건가요?"

그러자 거북이가 씩씩하게 답했어요.

"아니요!"

거북이는 서둘러 인사를 건네고는 도서관 문을 나섰습니다.

그날따라 거북이의 발걸음은 유달리 경쾌해보였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그 후로 거북이는 다시는 토끼와 달리기 시합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둘은 언제 앙숙이였냐는 사이 좋게 지냈다고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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