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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원

by 이어진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정원을 갖고 태어난다. 정원의 크기나 형태는 각기 다르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대개 비슷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나에게도 정원이 있다.

처음에 그것은 가꾸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처음으로 꽃을 심었다. 첫 번째 꽃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꽃에 물을 주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렸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물을 잘 주었던 것 같은데. 나는 주저앉아 엉엉하고 소리내어 울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땅을 가꿔보렴. 꽃이 잘 자라려면 우선 땅이 건강해야 하거든."


그날부터 땅을 가꾸기 시작했다. 땅을 엎고, 다지고, 물고랑을 만들었다. 아. 냄새 나는 거름도 주었다. 그리고는 두 번째 꽃을 심었다.

'이번에는 절대 죽게 두지 않을 거야.'

꽃을 보며 다짐했다. 매일 정원에 가서 물을 주고, 쓰다듬고, 양분을 주었다. 실수로 무엇 하나 놓칠까 안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꽃도 죽어버렸다. 억울했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하루에도 수십번씩 자책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너무 가까이 닿으면 안 된단다. 꽃도 숨 쉴 공간이 필요해. 너무 꼭 껴안으면 힘들 수 있어."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정성과 애정을 쏟을 수록 꽃이 아파한다니. 그 사실을 납득할 수 없어 괴로웠다. 나는 또 엉엉 우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세 번째 꽃을 심기 위해 땅을 팠다. 이번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만 정원을 찾았다. 꽃이 얼마나 자랐을지 궁금해도, 혹시 비를 맞아 상하지는 않았을까 걱정돼도 꾹 참았다. 나때문에 또 꽃이 죽어버릴까 안달복달했다.

그러다 일주일만에 다시 정원을 찾았을 때 세 번째 꽃 또한 죽어있었다.


나는 도저히,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써도 안 되는 구나. 나는 꽃을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이구나. 정원을 가꿀 필요가 없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그 후로 다시는 꽃을 심지도, 정원을 가꾸지도 않았다.


그러자 정원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잡초들이 무성해졌다. 무심코 보면 잡초들도 그런대로 예쁘게 보였다. 게다가 꽃처럼 쉬이 죽지도 않고, 신경 써야 할 것도 없었다. 나는 어느새 잡초로 가득한 정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엄마 생각은 달랐다.

"잡초는 생기는 즉시 뽑아줘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정원을 전부 망가뜨리고 말거야."

나는 반항하듯 따져 물었다.

"저렇게 멀쩡한데 망가지기는 뭐가 망가진단 말이에요?"

"겉으로는 괜찮아 보일 수 있어. 하지만 뿌리가 땅을 깊숙이 파고들수록 정원은 점점 병이들고 말거야. 그날이 오면 회복이 어려워질 수도 있어. 서두르렴."

하는 수 없이 잡초를 뽑았다. 그 많던 잡초가 사라지고 깨끗하게 정돈된 정원을 보니 다시금 꽃을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차올랐다. 하지만 지난 날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바로잡았다.

'잡초를 뽑고, 정원을 깨끗하게 가꾸는 것. 그거면 됐어. 절대 꽃을 심지 않을 거야.'

나는 다짐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했다.


정원은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처럼 윤택하고 비옥해졌다. 한눈에 보아도 건강한 생명력이 넘쳤다. 하지만 텅 비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려왔다. 그 작고 소중한 생명은 정원 한 가운데에 스스로 자리를 잡았다. 나는 괜히 나 때문에 민들레가 죽어버릴까 두려웠다. 가까이 다가갈 수도, 그렇다고 관심을 완전히 끌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멀리서 하염없이 지켜보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민들레가 조금씩 자랄 수록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

봄바람같은 그 노랫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멜로디였지만 귀에 익었다. 그걸 듣고 있으면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가만히 민들레의 노래를 듣다, 용기를 내었다.

'가까이 다가가보자.'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수록 민들레의 노랫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마침내 민들레의 꽃 내음이 짙게 느껴질 만큼 가까이 다가갔을때 민들레는 노래를 멈추고 말했다.

"안녕?"

"아..안..안녕."

"왜 내게 가까이 오지 않니?"

"네가.. 나때문에 죽어버릴까봐..."

"나는 네 곁에 오래오래 머무를 거야."

"그게 정말이니?"

"그럼. 네 정원은 따뜻하고 포근해. 나는 이런 곳을 찾고 있었어."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글쎄. 난 아무 것도 필요한 게 없는걸."


민들레의 말을 믿을 수 없어 황급히 되물었다.

"바람이 불면? 비가 오면? 햇빛이 너무 강하면?"

"넌 이미 네 정원을 열심히 가꾸었잖아. 난 그거면 돼."

"..."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 가장 진심 어린 마음을 골라 답했다.

"앞으로도 열심히 정원을 가꿀게. 널 위해."

그러자 민들레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넌 그저 내 노래를 들어줘. 난 그거면 돼."

나도 민들레처럼 웃으며 답했다.

"그건 내 기쁨이야."


우리는 나란히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정원에서는 민들레의 노랫소리가 마치 영원히 이어질 것처럼 울려 퍼졌다. 그리고 봄바람 같은 그 노래는 우리가 정원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어쩌면 영원히 이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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