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벙커 후기
바르셀로나에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는 공간이 있다. 편의점은 커녕 흔한 구멍가게 하나 없고, 제대로된 화장실조차 구비되어 있지 않으며, '이거 등산길 아니야?' 할 정도로 산중턱에 자리잡은 곳. 그럼에도 그곳을 향하는 버스에는 온갖 휘황찬란한 모습을 한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에 저런 옷을 자기 돈 주고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옷에, 채도 높은 화장, 말도 안되는 위치에 박혀있는 피어싱을 착용하고는 말이다. 그들의 주머니에는 대개 스피커, 과자, 술, 그리고 대마초가 있다.
한국의 경리단길보다 핫하다는 그곳은 바르셀로나 북서부에 있는 벙커이다. 벙커. 구글지도에 제대로 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관광지라고 말하기 무색한 공간이다. 옛 군인들이 사용했던 벙커에서 그대로 이름을 따온 벙커는 말그대로 벙커다. 커다란 돌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있고, 버려진 땅이라는 듯 풀과 들꽃이 아무렇게나 자라있다.
모든 게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는 벙커에서도 가장 '아무렇게나'인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누군가에게 반항이라도 하듯 크게 틀어놓은 음악. 누가 보든 말든 대수롭지 않게 추는 춤. 한 손에 끼워진 담배와 나머지 손에 들린 맥주. 자칫 실수하면 한 순간에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말텐데도 게의치 않고, 무려 2개의 펜스를 무단으로 껑충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버리는. 누가 더 살갗을 많이 보이나 경쟁이라도 하듯 벗어재낀 옷. 바르셀로나 젊은이들의 '아무렇게나'는 평생을 지극한 노잼 인간(ㅠ^ㅠ)으로 살아온 나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은 이모든 게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홍대의 짙은 밤거리만큼이나 짙은 무언가에 취해 있었다. 아니 어쩌면 대낮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홍대의 그것보다 농도가 진할지도 모른다. 그건 뭐였을까? 치기? 청춘? 낭만? 방종? 젊음의 유기? 무책임? 어떤 표현을 골라써도 어색함이 없지만 나는 보다 어색한 낱말로 표현하고 싶다.
그건 자유였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유. 내일의 안녕과 월급 그리고 체력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들은 내가 알던 자유를 가장 퇴폐적인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흔히 퇴폐적인 것들이 그러하듯 그건 다소 섹시하기까지 했다.
그 완벽한 자유 속에서 가장 부자유스러운 건 단연코 나였다. 자동적으로 가장 퇴폐적이지 못하고, 또 가장 섹시하지 못한 사람 또한 단연코 나였을 것이다.(ㅠ^ㅠ) 왜냐하면 나는 가능성이 있는 모든 불행을 최고 등급부터 최저 등급까지 다 따져봄으로써 온갖 걱정을 사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고질병이다.)
벙커에 도착하자 마자 제일 먼저 한 행동은 혹시 발을 헛디뎌도 안전한 장소를 찾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바지가 더러워질지 모르니 한국에서부터 챙겨온 돗자리를 펴는 것이었고. 그다음엔 얼굴이 탈 지도 모르니 그늘에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모자를 쓰고 썬크림을 한 번 더 덧칠한 것은 말하자면 입만 아픈 일이고, 소화기관이 제역할을 못하는 탓에 애써 챙겨온 레이스 감자칩을 꺼내놓고도 먹지를 못했다. 그와중에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비릿한 대마초 냄새 때문에 내 건강이 오염될까 근심스럽기까지 했다.
모든게 아무렇게나인 벙커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에 자리잡은 나는 비교적 편안해진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인간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요즘 유행한다는 불멍 대신 아무렇게나멍을 했던 것이다. 아무렇게나 춤 추고, 아무렇게나 마시는 자유 속에서 그들은 편안해보였다. 그무엇도 그들의 '지금'을 방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반면 지금을 사는 그들은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을 테지. 지금이 너무 좋으니까. 완벽하게 좋으니까. 조금도 낭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니까. 내일을 위해 오늘을 불행하게 살아도 좋은 사람에게는 시선을 낭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일을 사는 나는 지금을 사는 그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물속에서 유영하듯 편안하게 즐기는 그들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그건 순도 100%의 부러움이었다. 평소 우월감을 느끼며 하던 생각, 예를 들면 “어쩌려고 저렇게 대책없이 살아?”와 같은 게 아니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옳고 그름은 없다지만, 그날 내 삶은 오답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내게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잘못 살아온 것 같았다. 나는 왜 지금을 즐기지 못할까? 그까짓게 뭐가 중요하다고 안달복달일까? 미래를 위한 절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절제라는 누명을 쓴 구속이 아니었을까. 내일을 위한다며 현재를 너무 괴롭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했다.
그리하여 이글은 오답노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좋은 글은 독자가 스스로 무언가를 느끼게 만드는 글이라던데, 내 글은 좋은 글이 되기는 틀렸다. 독자의 느낌보다 개인적 성찰을 더 중요시하는 글이니까 말이다. "~하기"나 "~하지 않기"로 가득찬 글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좋은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하더라도 다짐해야겠다.
자유로워지기.
그리고 내일을 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