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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마음

by 이어진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요. 처음 세상에 나온 마음은 유리구슬처럼 깨지기가 쉬워요. 그래서 아주 조심히 다루어야 하죠.


여기 아이가 있어요. 아이도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아이의 마음은 투명하고 깨끗했어요. 새 것처럼 반짝 반짝 빛이 났죠.

엄마는 아이의 마음을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아이야, 이 마음은 아주 소중한 것이니 잘 간직해야 한단다."

아이는 엄마의 말을 귀담아 들었어요. 하지만 마음을 간직하는 방법은 알지 못했어요.


어느 날 아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공원에 산책을 갔어요.

"어머, 저기 그릇이 참 예쁘네요."

엄마가 유리 그릇이 많은 가게를 가리켰어요.

"그럼 들어가서 구경할까요?"

아빠는 엄마와 아이를 이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어요.


쨍그랑!

이걸 어쩌죠. 아이가 그릇을 깨뜨렸지 뭐예요.

"잠..잠깐만 만져보려고.."

아빠는 아이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호통을 쳤어요.

"조심을 했어야지!"

아이는 아빠의 고함소리에 놀라 눈물이 터졌어요.

"뭘 잘했다고 울어! 뚝 그치지 못해?"

아이는 실수였다고, 정말 실수였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입 밖으로는 울음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그때였어요.

쨍그랑, 쨍그랑.

바닥의 깨진 그릇처럼 아이의 마음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아이는 흡집 난 마음을 어루만지며 속상해했어요. 그 마음은 더이상 아름답지 않아보였거든요.

"분명 유리구슬 같았는데..."

아이는 이제 중고 물건처럼 깨져버린 마음이 싫었어요.

그러자 엄마가 아이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아이야, 흠집 없이 마음을 간직할 수는 없어. 누구나 다 조금씩 깨져있기 마련이란다."

"그게 정말이에요? 엄마도요?"

"그럼 당연하지. 우리 주변의 사람과 상황이 마음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거든. 그러니 아빠를 용서해줄래? 아빠도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닐 거야."

엄마는 싱긋 웃으며 말했어요.

아이는 엄마를 따라 웃었지만 그래도 속상함이 가시지는 않았어요.


가게를 나와 산책을 이어갔어요. 하지만 아이는 엄마 아빠 뒤에서 땅만 보며 걸었어요. 아빠가 화가 많이 난 것 같았거든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눈을 반짝였어요!

이게 웬 떡! 저기 바닥에 장수하늘소 같은 곤충이 있어요! 장수하늘소는 쉽게 만날 수 없는 곤충이거든요. 아이는 가만히 장수하늘소의 움직임을 바라보았어요. 윤기나는 등딱지와 오물조물한 움직임을 보니 기분이 한 결 나아지는 것 같아요.


그러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깨져 있던 마음이 채워졌어요! 채워진 새 마음은 루비 색이었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이는 깜짝 놀랐어요.


놀랄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공원에서 아이가 좋아하던 노래가 흘러나왔어요. 아이는 신이 나서 그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불렀어요. 내친 김에 춤까지 추었죠. 그러자 곁에 있던 엄마 아빠가 박수를 쳐주었어요.

"잘한다 우리 아들."

"어쩜 이렇게 춤을 잘 출까?"

다행이에요. 아빠 기분이 풀린 것 같아요. 게다가 한바탕 춤을 추고 나니 가슴 한 켠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해졌어요. 그 뚫린 구멍으로 시원한 바람이 드나드는 것만 같았죠.


그러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깨져 있던 마음이 에메랄드 색으로 채워졌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이는 에메랄드 색이 반짝이는 것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 졌어요.


아이는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 깨져있던 마음이 채워졌어요! 알록달록한 색으로요!"

"아이야,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은 깨진 마음을 새 마음으로 다시 채워주곤 한단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글쎄, 정확히 어떻게 채워지는지는 아무도 몰라. 다만 수채화 물감이 번져가듯 희미하게, 아주 천천히 새 마음이 채워지곤 해."

"흠. 어려워요."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 했어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할 때는 잠시나마 안 좋은 일들을 잊게 되는 거라고 말이야. 생각해보렴. 아까 곤충을 바라볼 때 그릇을 깨뜨렸던 일이 떠올랐니?"

"음.. 아니요! 곤충만 보였어요."

"그러면 춤을 출 때는?"

"생각나지 않았어요."

"바로 그거야. 좋아하는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안 좋은 일들을 잠시 잊게 해. 영원히 잊게 해주진 못하더라도 말이야. 잠시 잊고, 다시 떠올리고, 또 잠시 잊고... 그러다 잊게 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 자리에 새 마음이 채워지는 거란다."

"그럼 루비랑 에메랄드가 새 마음인거에요?"

"그렇지. 새 마음은 이전의 마음보다 훨씬 단단하단다. 한 번 두드려볼래?"

아이는 새로 채워진 루비 색과 에메랄드 색 마음을 두드려보았어요.

땅! 땅! 땅!

우와 엄마 말이 맞았어요. 새 마음은 튼튼하고 단단했어요!

"그 마음은 이제 잘 깨지지 않을 거야."

아이는 새롭게 채워진 알록달록한 마음이 아름다워보였어요.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아이의 마음은 다채로운 색의 새 마음들로 채워졌어요. 사파이어 색, 자수정 색, ... 아이의 마음도 그만큼 단단해졌어요. 하지만 세상은 아이의 마음을 시험하기라도 하듯,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갔어요. 바로 엄마였죠.


엄마는 갑자기 아이 곁을 떠났어요. 작별인사도 없이요. 사실 엄마는 시간이 많이 남은 줄 알았어요. 그래서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그래서 아이의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지면, 그 때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던 거예요. 하지만 시간은 엄마를 기다려주지 않았답니다.


쨍그랑! 쨍그랑!

아이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어요. 새 마음들도 버티지 못하고 와르르 깨져버렸어요. 아이는 지금껏 이렇게 큰 슬픔은 처음이었어요. 무얼 어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죠. 엄마가 그것까지 알려주진 않았거든요. 아이는 그동안 새 마음을 채워줬던 것들을 다시 해보았어요. 특별한 곤충을 찾아다니고, 좋아하는 노래에 맞추어 춤을 췄지요. 하지만 그 무엇도 깨진 마음을 다시 채워주지 못했어요.


아이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큰 슬픔을 이겨낼 방법을 말이죠. 아이는 큰 행복을 찾아나섰어요. 큰 슬픔을 잊기 위해선 아주 커다란 행복이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아이는 가장 큰 행복이 뭘까 한참을 고민했어요.

좋았어! 바로 그거에요!

아이는 곧장 아빠에게 달려갔어요.


"아빠! 생일파티 해주세요!"

"생일파티? 아이 참, 내 정신을 좀 봐. 곧있으면 우리 아들 생일이구나."

"네! 그 때 케잌도 불고, 폭죽도 터뜨리고, 선물도 받고 싶어요."

"그래. 아빠가 우리 아들 하고 싶은 거 다 해줄게."

아이는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였어요. 이 정도면 가장 큰 행복을 찾은 것 같았거든요.


아이는 생일 날이 손꼽아 기다려졌어요.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매일 밤 잠까지 설칠 정도였지요. 두근두근! 드디어 오늘이 생일 파티 날이에요! 파티를 하고 나면 분명 마음이 새로운 색으로 채워져 있을 거에요. 생일 파티는 큰 행복이 틀림 없으니까요!

"생일축하한다. 이건 엄마가 주는 선물이란다."

"네? 정말요? 엄마가요?"

"그래. 엄마가 그렇게 아프면서도 네 생일 선물을 미리 준비해놓으셨어."

그말을 듣자 아이는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졌어요. 엄마만큼 아이를 사랑해준 사람은 없으니까요.

"얼른 열어보렴."

아이는 서둘러 선물 상자를 열어보았어요. 그 안에는 손목 시계가 들어있었어요.

"우와, 시계에요!"

아빠가 아이의 손목에 시계를 채워주며 말했어요.

"이걸 볼 때마다 엄마를 기억해주렴."

"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차고 다닐게요."

아이는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엄마를 떠올리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생일 파티가 끝났어요. 아이는 방에 들어와 서둘러 마음부터 확인해보았어요. 무슨 색으로 채워져 있을지, 또 얼마만큼 채워져 있을지 궁금했거든요.

하지만

아이의 기대와는 달리 깨진 마음은 다시 채워져있지 않았어요. 와장창 깨진 상태 그대로였죠.

'생일 파티 만큼 큰 행복도 아무 소용이 없다니.'

아이는 절망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 다음으로 큰 행복을 찾아 나섰어요. 해수욕장, 동물원 같은 것들을요. 하지만 그 역시도 마음을 채울 수는 없었어요. 어떤 것을 해도 큰 슬픔은 잊혀지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엄마와 함께했던 기억이 더 선명해졌을 뿐이었죠. 아이는 희망을 완전히 잃었어요.


아이는 방에 틀어박혀 며칠이고 엉엉 울기만 했어요. 이번에는 무엇으로도 깨진 마음을 채울 수 없으리라고 확신했죠.

"엄마가 살아 돌아오는 것 말고는 아무런 방법이 없어!"

"과연 그럴까?"

이게 무슨 소리에요? 아이는 갑자기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깜짝 놀라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어요. 하지만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었죠.

"나를 찾니? 난 여기 있어. 네 손목 위에 말이야!"

아이는 왼쪽 손목 위에 놓인 시계를 바라보았어요.

"뭐..뭐야? 시계가 말을 해?"

"응. 난 시간이야. 널 도와주고 싶어."

"시간이라고?"

"응. 사람들은 나를 통해 위로를 받곤 하지. 내가 있는 한 위로 받지 못하는 마음은 없어."

"네 말은...내가 다시 새 마음을 채울 수 있다는 뜻이야?"

"당연하지."

아이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어요.

"내가 어떻게 하면 되니?"

"지금처럼만 계속 하면 돼."

"그게 무슨 뜻이야? 지금처럼만 이라니?"

"널 기쁘게 하는 것들을 계속 하라는 말이야. 장수하늘소, 노래와 춤 같은 것들 말이야."

"그건 이미 다 해 봤어.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던걸."

아이는 지쳐있었어요. 그러자 시간이 단호하게 말했어요.

"날 믿어. 계속 해. 큰 슬픔을 채워주는 것은 큰 행복이 아니야. 네 일상 속에서 작은 기쁨을 계속 느끼는 것이 중요해. 그건 아주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한 거야?"

"아주 긴 시간. 하지만 분명히 효과가 있을 거야. 내가 곁에서 도와줄게."


아이는 시간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어요. 아이는 작은 기쁨을 찾아나섰어요. 특별한 곤충을 발견할 때마다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춤을 췄고, 이따금 아빠와 놀이공원도 갔죠.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아이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작은 기쁨들을 더 발견하고자 노력했어요. 평소라면 무심

코 지나쳤을만한 것도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다 느끼려고 했죠.


봄 밤의 벚꽃 향기는 아이를 들뜨게 했어요. 벚꽃 향기는 새로운 발견이었죠.

친구들과 축구를 하니 턱 막힌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상쾌했어요. 축구는 개운한 행복이었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니 구름이 온몸을 감싸는 것만 같았어요. 샤워는 매일 느낄 수 있는 포근함이었죠.


하지만 아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새 마음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어요. 아이는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시간이 아이를 격려했어요.

"아이야, 날 봐. 내 초침이 또각또각 움직이지?"

"그게 뭐 어쨌다고?"

"내 초침을 잘 봐. 난 멈추지 않아. 또각또각, 계속해서 움직이지. 네 마음도 마찬가지야. 초침이 한 칸씩 움직이는 만큼, 그 작은 크기 만큼 네 마음도 계속 움직이고 있어."

"..."

아이는 초침 한 칸의 크기를 가늠해보았어요.

시간이 이어서 말했어요.

"다만 속도가 느려서 네가 느끼지 못할 뿐이야. 넌 정말 잘 하고 있어."

"그게 정말이야?"

아이는 다시 용기를 내었어요. 시계의 초침 한 칸 만큼, 딱 그만큼씩 아이는 천천히 마음을 채워나갔어요.

또각또각.

또각또각.


얼마나 시간이 더 흘렀을까요. 아이는 자신의 마음이 투명한 무언가로 채워진 것을 발견했어요. 아이가 일상의 기쁨을 찾는 동안 마음은 서서히, 천천히, 그리고 또각또각 채워지고 있었던 거에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속도로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다른 점이 있었어요. 분명히 새 마음이 차오른 것 같은데, 아무 색도 띄지 않았거든요.

"새 마음인데 왜 이렇게 투명한 거지?"

아이는 새 마음을 손으로 만져보았어요. 그건 마치 돌덩이처럼 딱딱했지요. 아이는 시간에게 물었어요.

"시간아, 이거 새 마음 맞니? 너무 투명해서 잘 보이지 않는 걸?"

그러자 시간이 활짝 웃으며 답했어요.

"응 맞아. 그건 가장 강한 마음이야. 가장 단단한 마음이야."

"가장 강하다고? 그럼 이 투명한 마음이 혹시 다이아몬드니?"

"맞아. 다이아몬드 마음이야. 아이야, 넌 가장 큰 슬픔을 잘 이겨낸 거야."

시간은 그렇게 말하고는 초침 한 칸 만큼 움직였습니다.

또각또각

아이는 새 마음을 바라보며 방긋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시간을 따라 아이도 딱 한 칸 만큼 움직였습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속도로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또각또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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