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어진 Apr 26. 2024

마중

단 몇 분이라도 더 많이 보기 위해 나가는 것.

 신호등이다. 6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아빠랑 서 있다. 금빛 털을 가진 커다란 골든 레트리버도 함께다. 나란히 서 있는 세 가족을 곁눈질로 살핀다. 귀엽다. 신호가 초록불로 바뀐다. 다시 앞을 보고 걸음을 옮긴다. 아이와 아빠와 골든 레트리버는 길을 건너지 않는다. 신호가 바뀌었는데. 티 나지 않게 고개를 돌려 세 가족을 훔쳐본다. 엄마를 기다리나? 다시 고개를 돌린다.


 횡단보도 반대편에서 여자가 달려온다. 급히 달려온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무표정이던 얼굴이 바뀐다. 웃는다. 환하게 웃는다. 세 가족은 온전한 네 가족이 된다.  


 마중. 마중을 나간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한 사람만을 위해 귀한 내 시간을 쓰는 것이다. 단 몇 분이라도 더 많이 보기 위해 나가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좋아할지 상상하는 것이고,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그 사람을 그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하며 설레어하는 것이다. 걸음걸이만으로 그 사람을 분간하는 것이고, 이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다.   




 11살 무렵이었나. 우리 집은 수원시 정자동에 있었다. 중학교 선생님이었던 내 엄마는 5시가 되면 집에 도착했다. 회식이 있는 날을 빼고는 그때쯤이면 집에 왔다. 회식이 잦지 않았기에 10일 중 9일은 그 시각에 집에 왔다. 나는 4시 40분쯤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었다. 그러고는 내 시츄를 안았다. 내 시츄는 땅바닥에 발이 닿으면 반드시 목욕을 해야 했기에 3kg쯤 되는 그 무게를 애써 안았다. 조금 무겁지만 괜찮았다. 엄마가 오면 내 시츄를 대신 안아줄 테니까.


 해 질 무렵이다. 하늘은 아직 파랗지만 이내 붉게 물들어 갈 것이다. 아파트 정문을 바라본다. 흰색 아반떼가 들어온다. 초록색 차 번호판을 확인한다. 흰색 아반떼는 그 당시에 아주 많았으므로 반드시 차 번호를 확인해야 한다. (분명 엄마랑 같은 차인데 모르는 아줌마가 나온 적이 있다. 그때의 그 머쓱함이란.) 엄마 차 아니네. 몇 대를 보낸다. 다시 흰색 아반떼다. 차 번호를 확인한다.


엄마다! 


 속도를 내야 한다. 내 시츄가 편하게 안길 수 있도록 팔을 고쳐 안는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빠르게 굴린다. 엄마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가야 한다. 가슴이 뛴다. 숨바꼭질 놀이를 할 때 같다. 술래가 내 쪽으로 아주 가까이 다가왔을 때와 비슷하다. 엄마가 차에서 내린다. 나를 못 보고 가버릴까 크게 외친다.


엄! 마! 


 엄마가 고개를 좌우로 돌린다. 나를 발견한다. 웃는다. 환하게 웃는다. 그래, 저거 보려고 나왔지. 그러고는 "차도에서 인라인 타지 말라고 했지! 그것도 해피를 안고! 위험하다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능청을 떨며 말한다. "괜찮아. 이제 잘 탄다니까." 엄마가 내 시츄를 받아 들며 말한다.

"오늘 저녁 뭐 해줄까?"

"음. 떡국!"

"맨날 떡국?"

시원한 바람이 분다. 기분이 좋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11세의 인라인 스케이트 소녀는 어느새 28살이 되었다. 수원시는 차로 가도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도시가 되었다. 흰색 아반떼는 진작에 폐차되었다. 내 시츄는 무지개다리 건너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지.

그리고.

10일 중 9일은 5시에 도착할 내 엄마는

다시는 집에 오지 않는다.


 


 신호등이다. 이제는 당신 마중을 나간다. 우리는 30분에 만나기로 했지만 일부러 25분에 도착한다. 당신을 기다린다. 온전히 당신만을 위해 내 시간을 쓴다. 단 몇 분이라도 더 많이 보기 위해 나간다. 당신이 얼마나 좋아할지 상상하고,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당신을 당신인지 아닌지 확인하며 설레어한다. 걸음걸이를 유심히 본다. 이 쪽으로 가까이 온다.


아. 당신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언제나 몇 번이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