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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Aug 27. 2024

핑크색 물음표

그건 6월의 햇살 탓이었을까.

오후 2시 35분. 

알람이 울린다. 석원은 아이폰의 알람을 끄며 쇼파에서 엉덩이를 뗐다. 외출 준비는 5분전에 끝내놓았다. 마지막으로 보라색 프라이텍 가방 앞섬에 손을 대고 만지작한다. 얇고도 네모길쭉한 카페 열쇠가 만져진다. 출발이다. 


6월의 햇살은 은근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석원은 이마를 가로지르는 땀을 닦아내며 카페로 향했다. 6월의 햇살 탓에 분홍케 물든 얼굴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석원의 보폭은 대체로 일정했고, 신호등이 많지 않은 탓에 도착 시간의 오차는 크지 않을테니. 


오후 2시 58분. 

열 번 중 여덟 번은 정확히 58분에 도착한다. 석원은 카페 입구에 늘어져 있는 화분의 개수를 세었다. 

하나, 둘. 의자만한 화분이 두 개밖에 야외로 나와있지 않은 걸 보니 사장님은 아직이군.


그렇게 생각하며 카페의 유리문을 밀었다. 

주방에는 미영이 군청색 앞치마를 두르고 한가로이 머그컵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있었다. 미영은 일주일 전부터 출근한 오전 알바다. 어디선가 카페 일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하여 사장이 면접도 보지 않고 덜컥 뽑았다. 3시 출근인 석원과 3시 30분 퇴근인 미영은 매일 30분씩 서로를 만난다. 


"미영씨."

석원이 주방으로 향하며 미영에게 알은 체를 했다. 미영은 손짓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석원을 확인하고는 짐짓 미소를 지었다. 

"오셨어요?"

"네. 오전에 별 일 없었죠?"

석원은 벽에 걸려있는 감색 앞치마를 두르며 물었다. 으레 하는 질문이었다.

"네. 오늘도 한가했어요." 으레 하는 대답이었다. 


석원은 미영의 답을 한귀로 흘리며 앞치마의 끈을 허리춤에 묶었다. 그리고는 가방에 손을 넣어 텀블러를 찾았다. 출근하자마자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건 석원에게 일종의 구원이었다. 


석원은 포터필터를 집어들고 콜럼비아산 원두가 모래성처럼 쌓여있는 그라인더에 올렸다. 그라인더는 무게를 인식했는지 스스로를 움직여 원두를 갈아냈다. 

지이잉. 

곱게 갈린 원두를 레벨링하기 위해 포터필터의 밑면을 냉장고 윗면에 대고 두드렸다. 타악 탁. 살짝. 너무 센 힘을 가하면 원두가 튀어 나간다. 그러면 귀찮게 행주로 닦아내야한다. 석원은 템퍼를 집었다. 템핑은 레벨링보다 더 신중히 해야한다. 기껏해놓은 레벨링을 템핑 한 번으로 망칠 수는 없다. 최대한 수평을 맞춘 포터필터를 실리콘 받침대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템핑을 했다. 세게 한 번 보다는 약하게 두 번이 맛을 돋운다. 석원은 스스로의 힘을 컨트롤 할 수 있다. 1부터 10까지 중 3정도의 힘을 팔에 들인다. 그다음엔 템퍼를 180도 돌린다. 다시 3의 힘을 가한다. 총 두 번. 딱 알맞은 압력이다. 마지막으로 머신에 포터필터를 끼워넣고는 추출 버튼을 눌렀다. 에스프레소가 추출될 시간이다. 


석원은 오롯이 추출에만 집중했다. 하루 중 석원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 그때 미영이 말을 걸며 석원을 방해했다. 

"사장님은 오전에 안 오셨어요. 아마 석원 씨 타임에 오실 것 같아요."

미영은 마치 그게 자기 잘못이라도 되는 듯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네네." 

석원은 미영을 쳐다도 보지 않고 답했다. 

사장과 스몰토크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귀찮긴 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싫은 건 아니니까. 그것보다는 이게 무슨 대단한 정보라고 매일같이 알려주는지. 전에 일하던 곳에서 하던 습관 같은 건가. 하는 추측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석원은 금새 관심을 추출된 에스프레소로 옮겼다. 


구수한 향기를 풍기는 텀블러를 한 손에 들고 시재를 확인하러 계산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미영이 석원을 막아섰다. 

"석원님!"

미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석원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네?"

석원은 너무 가까이 다가온 미영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황스럽군.

"저 부탁이 있는데요.. 라떼 아트 하는 것 좀 알려주세요!!"

"라떼아트요? 카페 알바해보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거긴 대형프렌차이즈카페여서 그런 건 안 알려주더라구요. 바쁘니까 그런 건 신경 쓸 여력도 안 되구요."


하긴, 우리 카페가 한가하긴 하지. 사장이 매일 앓는 소리 하는 게 영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아, 근데 저 시재확인 해야 되는데."

"저 빨리 알려주시고 확인하시면 안 돼요? 아 제발요." 그러면서 싱긋 웃는 미영이었다.


귀찮은데. 석원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 스팀피쳐를 집어들었다.

"이렇게 손에 힘을 빼고 양쪽으로 스냅을 주면서 쭈욱"

"아, 잠시만요! 여기 한 번만 더 설명해주세요!!"

"네? 아니 그러니까..."

"와 석원씨 최고! 어떻게 이걸 이렇게 잘 해요?"






"석원씨. 미영씨는 좀 어때? 일 잘하는 것 같아?"

사장은 면접도 없이 뽑은 게 신경이 쓰이긴 하는지 석원에게 물었다. 석원의 대답 한 마디로 마음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장이었다. 석원은 예전부터 사장이 자신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생각했다. 

"네 뭐."

"아이. 자세히 좀 말해봐. 계속 써도 될 것 같아?"

"저야 잘 모르죠. 30분 밖에 못 보니까."

"아오. 내가 석원씨랑 무슨 말을 하겠어." 

"아. 근데."

"어어. 왜? 무슨 일 있었어?"

"라떼 아트도 못하더라고요. 카페일 해봤다더니."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라떼 아트를 못한다고..."

"아니 그건 들었는데. 미영씨가 라떼아트를 못한다고?"

"네. 제가 오늘 낮에 알려줬어요."

"석원씨가 배운게 아니라 가르쳐줬다고?"

"네"


몇 번을 말해야 돼. 석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설거지용 고무장갑을 집어들었다. 

"그사람 바리스타 1급 자격증 가지고 있는 건 알지?"

"네?"

"1급 자격증 소지자라고. 그런 사람이 너한테 라떼아트를 배웠다고?"

"..."

"그사람이 왜?"

"..." 


석원은 순간 마음 한 가운데에 동그랗고 길쭉한 물음표가 새겨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선명한 핑크색 물음표.

그 핑크색만큼 석원의 얼굴도 분홍케 물들었다.

그건 6월의 햇살 탓이었을까. 

석원은 6월의 햇살을 오랫동안 간직하게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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