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삐용삐용. 너 지금 힘들어. 스트레스가 쌓여있어.
이따금 악몽을 꾼다. 내게 있어서 악몽이란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넘었다고 알려주는 신호와 같다. 삐용삐용. 너 지금 힘들어.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있어. 관리가 필요해. 그렇게 말해주는 빨간불. 삐용삐용.
악몽의 시작은 고등학교 시험기간 때였다.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악몽의 횟수가 늘었다. 무의식의 빨간불은 10분만 잘 생각으로 엎드렸던 독서실 책상 위까지 따라와 나를 못 살게 굴곤 했는데, 그때부터 재미라도 들린 건지 10년이 지난 아직도 종종 못살게 굴곤 한다.
내용은 주로 귀신, 전쟁, 도둑 등과 같이 대놓고 잔인한 것으로 구성되었으나 나이가 들고 현실감이 커지면서 점차 교묘하고 지독해졌다.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가장 치사했던 악몽은 교육청 실수로 임용고시를 다시 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지금까지의 악몽들은 어찌 알았는지 내가 싫어하는 것만 쏙 골라서 안 그래도 되는데 굳이 굳이 생생한 장면들을 연출하며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오늘 꾼 꿈은 좀 달랐다. 이걸 악몽이라고 명명해도 될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평화로웠고, 완벽하게 행복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땐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악몽이 아니었다고 하기엔, 그 꿈은 하루종일 내게 질척댔다. 끈질기게. 수업을 하는 도중에, 헬스를 하는 도중에 불쑥불쑥 떠올라 내 기분을 망가뜨렸다. 울적하게도 했다.
나는 그 꿈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건 악몽이었을까? 삐용삐용이 맞을까?
꿈의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는 다시 네 명이 되었다. 엄마가 살아있고 아빠가 건강했으며 언니와 나는 그걸 당연시했다. 그리고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 몇몇 인물들이 '우리'에 더 들어와 있었다. 추가된 '우리'는 총 6명이었다. 언니의 남편, 언니의 아이들, 나의 남편, 나의 아이들.
'우리'는 총 10명이었다. 10명의 우리는 거실에 모여있었다. 집에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빈틈없이 가득 찬 공간이 낯설었다. 아기들은 까르르 웃으며 엄마와 아빠에게 재롱을 떨었다. 잘은 모르지만 유치원생 정도 되어 보였다. 엄마와 아빠는 활짝 웃으며 아기들을 들어 올리고 껴안았다. 내 시야는 역광이었다. 6명의 뒤에선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었고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모습은 거뭇하게 보였다. 나는 강한 햇빛에 눈을 찌푸렸다. 그러나 반도 뜨지 못한 눈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완벽한 행복이었다.
사진을 찍었다면 역광이라 못 건졌을 그 광경을 보며 꿈속의 나는 생각했다.
'아기들이 있으니까 엄마, 아빠가 엄청 좋아하네. 꼭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다. 이래서 아기가 필요한가?'
이외의 다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역광으로 거뭇하게 표현된 완벽한 행복과 그 원인에 대한 추론 말고는.
이따금 악몽을 꾼다. 삐용삐용. 너 지금 힘들어. 빨간불. 그러나 오늘의 꿈은 악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임용고시 재시험도, 도둑도, 전쟁도 없었는데.
오랜만에 엄마를 보아서 좋았다. 우리가 다시 네 명이어서 좋았다. 우리가 10명이 되어서 좋았다.
그러나 나는 필요를 느낀다. 삐용삐용. 스트레스 관리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