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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Aug 27. 2024

경찰도 소름 쫙...폭우 속 정장 할아버지 정체는

기사를 읽고 상상해보았어요.

원문기사

"경찰도 소름 쫙"…폭우 속 정장 입고 도로 걷는 할아버지 정체는[영상] (naver.com)



"박경장님, 운전 괜찮으십니까?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요. "


최순경은 와이퍼가 빠르게 움직이는 유리창에서 시선을 거두고, 박경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시야도 확보되지 않는군.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것도 오랜만인데. 이 야밤에 어르신은 대체 어딜 가신 거야."


박경장은 몸을 운전대쪽으로 잔뜩 기울이고, 앞 유리창에 얼굴이 닿을 듯 고개를 뺐지만 고작 50m 앞밖에 보이지 않았다. 운전 경력이 1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 날 운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2024년 7월 21일 오후 10시 21분 연천경찰서. 

누군가 켜놓은 경찰서 속 뉴스에서는 연일 날씨 속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연천 지역에서는 110mm가 넘는 폭우가 내리고 있으며.."


기상캐스터의 음성을 들으며 최순경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의 가로등 불빛 아래에는 장대비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3일 전부터 시작된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지난하게 이어지는 장마기간이었다. '이런 날엔 제발 전화벨소리가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최순경은 시선을 다시 모니터 화면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오후에 있었던 재연 폭포 근처 터널 배수로 관련 사건 파일을 정리했다. 


'연천 같은 깡시골에,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 이 정도면 오늘 하루도 별일 없었네.' 


그러나 안도의 순간도 잠시. 그런 최순경을 비웃기라도 하듯 날카로운 전화벨소리가 연천 경찰서 안을 가득 채웠다. 


"삐리리리리" 


최순경은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받아들으며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네. 연천 경찰서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최순경이 속사포 랩처럼 빠르게 말했다. 


수화기 속 목소리가 말했다.

"어..어... 저희 남편이... 집을 나간 것 같아예.."


목소리는 최순경의 돌아가신 외할머니 목소리와 비슷했다. 느릿하고 연세가 지긋한 여성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전에 없던 당황스러움이 묻어있었다. 


최순경은 물었다.

"네? 이 시간에요?"


"제 남편이... 치..치매 환자라예..나이가 많아예.. 84..살...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대체 어딜로 홀랑 가버렸는지..제가 찾다가 찾다가 못 찾아서예...제 남편좀 찾아주이소..."

"네 할머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할아버님 인적사항이랑 마지막에 입었던 옷차림 좀 알려주세요."

"84살이고예.. 나이는 이갑수입니더..." 

최순경은 수화기 속 목소리를 받아적으며 말했다. 

"이갑수 84살. 그리고 옷차림은요?"

"옷차림은예..제가 자느라 보지를 못했는데예.. 이렇게 몇 번씩 집을 나간 적이 많은데예.. 그럴 때마다 양복을 입고 나가더라구예.. 검정색 양복.. 정년퇴임할 때 그양반이 입고 나갔던 거라예.."

어느덧 수화기 속 목소리는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최순경은 울음 속에서 할머님의 목소리를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검정색 양복. 일단 알겠습니다. 할아버님 키랑 얼굴도 좀 알면 좋은데. 간단히라도 말씀해주시겠어요?"






"최순경. 앞에 보여? 지금 나만 보이는 거 아니지?"

박경장님의 작고 빠른 목소리가 최순경의 정신을 깨웠다. 최순경은 빠르게 움직이는 와이퍼 사이로 앞을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했다.

"박경장님 뭐가 보이십니까? 저는 아무 것도.. 어..어???"

최순경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쏟아지는 비 사이로 검은색 물체가 다가오는 것이 흐릿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저게 뭡니까? 차 쪽으로 다가옵니다!! 경장님!! 속도를 낮추셔야 할 것 같은데요!!"

최순경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박경장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경찰차 앞으로 검고 흐릿한 물체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가까이 다가올 수록 헤드라이트의 빛을 받아 점점 선명해졌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검은 양복. 부서진 우산을 들고 있는. 

비틀비틀 걸어오는. 

노인.

늙은 노인. 이갑수씨. 

최순경은 비틀비틀 노인이 이갑수씨임을 확신했다. 박경장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경찰의 동물적인 직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경장님, 맞죠?"

"응. 맞는 것 같다. 얼른 나가서 도와드리자."

두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문을 열었다. 얼굴을 때리는 빗물로 인해 눈도 잘 뜰 수 없었지만 두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우산을 펼치지 않았다. 그럴 시간 없다는 듯. 

최순경과 박경장은 노인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 부서진 우산 속 노인은 이미 온 몸이 젖은 상태였다. 최순경은 노인과 맞닿은 자신의 제복 어깨죽지에 빗물이 스미는 것을 느꼈다. 

"할아버지. 이갑수씨 맞으시죠?" 

최순경이 물었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어떻게 여기 계세요. 경찰차에 얼른 타세요. 저희가 집에 모셔다 드릴게요." 

박경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할아버지를 안심시키려는 듯. 

노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순순히 경찰차에 탑승했다. 그모습은 마치 비에 홀딱 젖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최순경과 박경장은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수화기 속 할머니가 말해주신 외모 그대로였다. 두 사람은 노인이 무탈한지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무전기로 본부에 할아버지를 무사히 찾았음을 알렸다.






"이갑수씨 안전하게 도착했습니다."

최순경과 박경장은 경찰서 문을 열어재끼며 말했다. 

그러자 환한 전등빛 아래에서 키가 작고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가 달려왔다. 

'수화기속 목소리의 주인.' 

최순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노인을 할머니께 인계했다. 

"아유. 고맙습니더. 고맙습니더." 

할머니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녀의 주름이 가득 패인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이사람이 자꾸 출근해야 된다카면서 양복을 입고 이리 밖을 나가고는 합니더. 진짜 죄송하고 감사합니더. 비 많이 맞았지예." 

할머니는 최순경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할머니. 이게 저희가 해야할 일이죠."

최순경은 그렇게 말하며 할머니의 온기를 느꼈다. 

창밖의 가로등 불빛 아래에는 장대비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TV속 기상캐스터는 지도 위의 연천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부가 연천지역의 기상 호우특보를 한 층 더 강화한 가운데 되도록이면 외출을 삼가시고, 안전에 특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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