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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Sep 20. 2024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책 리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민음사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책의 한 꼭지인 <이해받지 못한 말들의 조그만 어휘집>이 사실상 이 책의 정체성 같았다. 조그만 어휘집을 확대해서 책으로 만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되지 않을까?      

헤라크레이토스의 강바닥같은 소설이다. 읽을 때마다 같은 내용이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 나는 이 소설로 어떤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비슷하게 나와 다른 악보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은 이 책에서 나와 전혀 다른 의미를 찾았을 것 같고, 더 많은 의미를 찾았을 것 같다. 그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사랑의 역사>

덥수룩한 머리가 끔찍한, 침울한 베토벤도 몸소 그의 Es musssein!을 우리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연주했다고 확신한다. 토마시는 그의 친구 Z에 대해 테레자가 한 말을 떠올리며 그들의 사랑의 역사는 Es musssein!이라기 보다는 _______(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에 근거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책>

테레자에게 책이란 은밀한 동지애를 확인하는 암호였다. 그녀를 둘러싼 저속한 세계에 대항하는 그녀의 유일한 무기는 시립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뿐이었다. 특히 소설들. 책은 그녀에게 아무런 만족도 주지 못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상상의 도피 기회를 제공했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다. 책을 통해 그녀는 남과 자기를 구분 지었다     


<우연>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사들이 커피 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모티프와 악보>

사비나의 삶이 음악이었다면, 중산모자는 그 악보의 모티프였다. 이 모티프는 영원히 되풀이되었으며 매번 다른 의미를 띠었다그 모든 의미는 마치 물이 강바닥을 스치고 지나가듯 중산모자를 거쳤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것은 헤라크레이토스의 강바닥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물에서 두 번 목욕하지 않는다!" 중산모자는 강바닥이었고, 사비나는 매번 다른 강물, 다른 의미론적 강물을 보았던 것이다. 같은 대상이 매번 다른 의미를 야기했지만 그 의미는 이전의 다른 모든 의미와 공명을 일으켰다새로운 체험은 보다 풍부한 화음으로 공명을 일으켰다

프란츠와 사비나는 그들이 서로에게 했던 말의 논리적 의미는 정확하게 이해했으나 이 말 사이를 흘러가는 의미론적 강물의 속삭임은 듣지 못했던 것이다. 사비나가 그 앞에서 중산모자를 썼을 때, 프란츠는 마치 누군가가 미지의 언어로 그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불편함을 느꼈다.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여자에 대한 플라톤적 개념>

마리클로드 자체가 여자인데, 그가 존중해야만 하는 그녀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여자란 누구란 말인가? 여자에 대한 플라톤적 개념은 아니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다. 그가 어머니에게서 존경하는 부분이 여자였다고 말할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를 사랑했지, 어머니에게 내재된 어떤 여자를 사랑한 것은 아니다. 여자에 대한 플라토닉한 개념과 그의 어머니는 동일한 것이었다.      


<배신>

배신. 배신한다는 것은 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배신이란 줄 바깥으로 나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다. 사비나에게 미지로 떠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

그녀는 다시 배신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자기 자신의 배신을 배신하기. 그녀는 남편에게 그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B를 위해 A를 배신했는데, 다시 B를 배신한다 해서 이 배신이  A와의 화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첫 번째 배신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첫 번째 배신은 그 연쇄작용으로 인해 또 다른 배신을 야기하며그 하나하나의 배신은 최초의 배신으로부터 우리를 점점 먼 곳으로 이끌게 마련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시적 기억>

뇌 속에는 시적 기억이라 일컬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지대가 존재해서 우리를 매료하고감동시키고우리의 삶에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 기록되는 모양이다. 토마시가 테레자를 안 후부터 어떤 여자에게도 그의 뇌 속에 있는 이 지대에 아주 사소한 흔적조차도 남길 권리가 없었다.

테레자는 그의 시적 기억을 독재자처럼 점령하여 다른 여자들의 모든 흔적을 쓸어 내 버렸다. 

사랑의 역사는 그 후에나 시작되었다. 그녀의 몸에서 열이 나는 바람에,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 그랬듯이 그녀를 돌려보낼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자 불현듯 그녀가 바구니에 넣어져 물에 떠내려 와 그에게 보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은유가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 개와 인간 사이의 사랑>

그녀에게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개와 인간 사이의 사랑보다 열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간 역사의 이러한 기형태는 아마도 조물주가 계획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이다. 테레자는 카레닌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조차 강요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 한 쌍을 괴롭히는 질문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가 나를 사랑할까? 나보다 다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가 나를 더 사랑할까? 사랑을 의심하고 저울질하고 탐색하고 검토하는 이런 모든 의문은 사랑을 그 싹부터 파괴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다시 말해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사랑)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것도 있다. 테레자는 카레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를 자신의 모습에 따라 바꾸려 들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그가 지닌 개의 우주를 수락했고 그것을 압수하고 싶지 않았으며 그의 은밀한 성향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녀가 개를 키운 것은 그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함께 살 수 있도록 그에게 기본적인 언어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행복>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라고 테레자는 생각한다. 

농담은 반복된다 해도 그 재미가 조금도 훼손되지 않는다. 그 반대다. 전원시의 맥락에서는 유머조차도 반복의 달콤한 법칙에 따른다.      


<죽음>

테레자는 시트가 젖어 있는 것을 손으로 느꼈다. 카레닌은 오면서 우리에게 조그만 늪을 가져왔고 떠나면서 또 하나를 남겼구나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개의 마지막 작별인사인 이 습기를 손가락으로 느끼며 행복해했다.          


    



Q.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다? 권태는?


Q.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결핍은 무엇일까?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Q. 제목이 지칭하는 ‘참을 수 없는’ 대상이 ‘존재’인지 그 존재의 ‘가벼움’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에 기인해 제목 그 자체로서도 상징적인 유행어이자 밈이기도 하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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