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게뭉게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이 있다. 과자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과자를 먹는다. 호르몬이 군림하는 날에는 초코칩이 가득 묻어 있는 과자를, 그렇지 않은 날에는 양심상 원물로 만든 감자칩을 먹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지독한 과자 중독인 내가 벌써 2주째 과자를 먹지 않고 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과자만큼은 참지 못했던 내가! 심지어 이번 주는 호르몬 이슈가 있는데도! 이 기세라면 일주일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건강을 위해 절제하는 내가 자랑스럽다. 뿌듯하다. 이렇게 천천히, 조금씩 내 몸에 해로운 음식을 마이너스해야지. 좋은 것들로만 채워야지.
이번 주는 '수다 총량'을 초과했다. 월요일과 수요일에 선생님들과 수다 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다 총량은 1주일에 1 모임 정도면 한가득 채워지는데 이번 주엔 벌써 2번이나 모임을 가졌다. 이제 입을 다물어야 할 때이다. 더 이상의 수다모임은 곤혹이다.
수다모임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기분이 붕 뜬다. 지나친 성찰과 자기 검열 탓일까? 들은 말보단 뱉은 말이 많이 떠오른다.
'그때 그 말은 하지 말 걸. 잘난 척 같았을까? 그냥 모르는 척 칭찬해 줄걸. 다음에는 저렇게 말해야지.'
끝없는 반성 또 반성.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생각들.
뭉게뭉게는 나를 혼탁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도, 샤워를 하면서도, 하루 중 가장 평온하다는 자기 직전까지도 졸졸 쫓아와 괴롭힌다. 집중할 수 없게 하고 개운하지 않게 하며 행복의 시간을 빼앗는다.
뭉게뭉게는 모임이 끝나는 즉시 생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굿바이 인사를 마치고 집에 가는 교통편에 탑승하는 순간부터. 가볍게 뱉었던 말들. 상대의 복잡 미묘한 표정. 어긋난 대화. 그런 것들이 한 데 뒤엉켜 시커먼 뭉게뭉게를 만든다. 점점 퍼져 머릿속을 점령한다.
나이 듦의 장점을 딱 한 가지만 뽑으라고 한다면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요즘날 알게 된 사실은
1. 유독 나를 혼탁하게 만드는 만남이 있다는 것과
2. 이제 그런 모임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는 것이다.
안 친하거나, 어디 가서 험담을 할 것 같거나, 호불호가 확실하고 예민한 사람들. 그런 사람이, 그런 모임이 있다. 이제는 그런 모임에 가고 싶지 않다.
그와 반대인 모임도 있다. 만나고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혹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나는 이게 조금 더 건강한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하게 편안한 사람들. 그들은 보통 이런 특징이 있다.
친하거나, 비판 없이 깔끔한 대화를 하거나,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거나, 무던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험담을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뭉게뭉게를 시작하는 내 머릿속에 브레이크를 밟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운다.
'그때 그 말은 하지 말걸.' 싶다가도 '아 걔는 그런 말 신경 쓰는 애 아니지? 괜찮겠다.' 싶은 사람들. '싫으면 싫다고 표현했겠지.'싶은 솔직한 사람들. 이제는 그런 모임만 가고 싶다.
과자를 먹지 않은지 2주가 다 되어 간다. 이번 주에 예정된 수다 모임 하나를 취소했다. 다음 주는 친하고, 비판 없이 깔끔한 대화만 하는 무던한 사람과 좋아하는 도시에 간다.
좋은 것만, 좋은 사람만 채우고 있는 건강한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