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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Jun 09. 2024

누가 이길 수밖에 없을까?

때론 아리송한 - 노란쌤의 '놀부심보 다스리기' 수업 

누가 이길 수밖에 없을까?"

“선생님, 학교에서 팽이놀이 해도 돼요?”


“좋아. 사이좋게 하는 거야. 

단, 팽이로 다툼이 생기면 더 이상 학교에서 하지 않는 것으로 하자.”


오래전부터 우리는 ‘~이 가능하나, 만약 싸우면 못한다’라는 화법을 즐겨 사용했다. 


그날도 우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곧 싸울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역시나 몇 주 지나지 않아, 예상했던 대로 다툼이 생겼다. 

4개 반 중 3개 반에서 팽이놀이가 사라졌다. 

마지막 남았던 우리 반 또한 어느 날 다툼이 일어났다.


“선생님들, 저희 2반 '팽이놀이'로 모험을 좀 더 이어가 보고 싶어요. 

학생들에게 싸우면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선생님들과 동학년 학생들이 동의해 주신다면, 

팽이 놀이 속에서 배움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나는 학년 규칙이었던 만큼  동학년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동의를 구했고,  

유독 팽이에 애착이 강했던 우리 반만 팽이놀이를 이어가고 

다른 반은 쉬는 시간 티볼 경기하는데 올인했다.


“선생님, 감사해요. 저희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셔서요. 

놀이하고 싶은 사람끼리 모여서 점심시간에 팽이규칙을 만들어 볼게요.”


담임의 공동체 협력 놀이 철학을 들은 남학생들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놀이 규칙을 만들었다. 

처음 8개로 시작되었던 규칙은 점차 정교해지더니 학기 말에는 22개로 늘어났다. 

22개의 규칙 안에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윤리, 도덕, 정의가 녹아있었고, 

그들은 스스로 만든 규칙에 따라 학년 말까지 평화롭게 놀이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팽이놀이 영향권에 든 빅이벤트가 벌어졌다.


   옆 반과 반대항 티볼 경기를 하는데 우리 반이 계속 지는 것이다.


“선생님, 앞으로 우리 반은 반대항 티볼 경기 안 할래요. 자꾸 지니 기분 나빠요.”

“우리 반은 쉬는 시간에 무엇을 하지?”

“팽이놀이요.”

“다른 반 친구들은?”

“티볼이요.”

“우리는 어디에 시간을 투자했지?”

“팽이요.”

“그럼, 누가 이길 수밖에 없을까?"

"다른 반이요."

"우리가 지는 것은 당연한 거야. 우리도 팽이놀이 그만하고 티볼할까?”

“싫어요. 저희는 팽이놀이가 더 좋아요.”

“그럼, 지는 상황을 결코 불만스럽게 받아들이지 말자. 

그건 놀부 심보잖아. 

내게 일어나는 일은 남 탓이 아닌, 결국 내가 만들어낸 것, 내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인정하자. ”


툴툴대던 남학생들 얼굴에 장난 가득한 개구쟁이 미소가 다시 번졌고

점심시간, 그들은 다시 모여 흠뻑 팽이놀이에 빠졌다.


학생들에게는 이 상황을 ‘인과응보’ 원리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알려주는 기회로 삼았지만, 

그때부터 내 안에서는 새로운 질문이 차올랐다.


학년 초, 다툼이 생겼던 시점에서 팽이놀이를 멈췄다면, 우리 반 학생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팽이 놀이와 티볼의 교육 효과를 어떤 기준으로 비교해 볼 수 있을까? 

완성된 놀이 경험을 해주고자 한 나의 놀이 철학에 모순은 없는가? 

아니, 내가 만들어가는 학급경영 철학에 모순은 없는가?


내 안에서 흘러나온 무수한 물음은 내 옆에서 서성였고, 

난  지금도 이 질문들에 자신 있게 답하고 싶어, 

이곳저곳을 기웃기웃하고 있다.


 feat.  정석 작가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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