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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Jun 29. 2024

같은 듯 다름?
다른 듯 같음?

 때론 총총한 - 노란쌤의  깊은 생각샘 

 “회의 방법, 우리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교사들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회의이지 않습니까? 

교직원 회의,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닌데, 왜 이리 교직원들과 소통하는 것이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교직원회 권역별 컨설팅’에서 교직원 회의를 진행하면서 일어나는 

     반복된 문제들에 무력감을 느낀 한 교직원회 대표의 말씀이다. 


   나 또한, 이 분처럼 오래전부터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친구 따돌리면 안 된다’ 가르치면서, 

뜻이 통하지 않은 이와 소통하다 막히게 되면, 

문제 상황에 직면해서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담을 쌓고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친구들과 협력해야 하는 여러 이유를 들어 학생들을 설득하고 있는 우리는 

과연 직장 동료들과 그 말만큼이나 협력하면서 지내오고 있는가?


계속해서 나를 잡아끄는 그분의 말씀을 며칠 동안 음미하다가 

 오늘에서야 비로소 내게 끌림이 있었던 이유 하나를 찾게 된다. 

오래전부터 내가 품고 있던 질문들과 결을 같이 하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학생 회의’와 ‘교직원 회의’, 무늬는 같은 ‘회의’이지만 이 둘은 분명 차원이 다른 행위였다. 


학생과 교사가 살아온 세월과 삶의 스토리 차이만큼이나 다르게 해석되어야 하는 액션을 

우리는 ‘회의’라는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는 않나? 


  우리는 빈약한 언어의 한계가 만들어 낸 함정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극히 개인적인 성공 경험 덕분이겠지만 나는 학생 회의 진행 후 기분 좋은 기억이 많다. 


이 ‘좋음’이 무엇 때문일까를 곰곰이 타고 들어가다 보니, 

이는 학생의 '사고의 유연함' 덕분이다. 

수많은 삶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 어른들이 쉽게 되찾을 수 없는 

‘맑은 영혼만이 향유할 수 있는 유연함’이기도 했다. 

어른들이 되찾기 위해서는 쉼 없이 수련해야만 가능한 유연함이다. 

간절함과 부단한 노력 없이는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그 유연함을 되찾기란 결코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학생이 경험하고 있는 ‘회의’와 어른인 교사가 경험하는 ‘회의’ 간의 이러한 차이를 읽어내지 못하면,

 ‘우리가 가르치는 회의를 정작 우리는 왜 제대로 하지 못하는가?’ 하는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같게 불리어지고당연하게 여겨지는 익숙한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교직원 간 소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그 차이를 섬세하게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지금 지쳐있다는 증거일 지도 모른다. 


섬세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지금 이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같은 듯 보이나 분명 다를 수밖에 없는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같게 바라보고, 

스스로가 만든 기준으로 문제를 상황을 상대를 판단 해석하는 것은 

내 안에 빠져있다는 증거일 지도 모른다.


 가만히 멈춰서

내가 마주하는 경험이 같은 듯 다름’ 인지, ‘다른 듯 같음인지를 분별하는 여유를 잠시 가져본다.


feat.  정석 작가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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