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내가 눈치채었는지 모르겠지만, 교사인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친구 책상 아래로 쓰레기를 살짝 미는 발도 보이고,
학급문고를 홱 던지고 가는 손도 보이고,
책가방 속에 숙제 안 한 학습지가 있으나 집에 두고 왔다고 말하는 입도 보인다.
‘한 번은 분위기 잡고 말해야지’ 몇 차례 기다리다가
‘지금이 말할 타이밍이다’는 확신이 들 때면
나는 차분하게 말을 뽑아낸다.
< 노란쌤의 학급경영 철학 > “하던 일 멈추고, 잠깐 선생님 쪽으로 몸을 돌려주세요.”
당연히 학생들은 이 말에 나를 곧바로 바라봐주지 않는다.
나는 우리 반 주의집중 구호를 선창 한다.
“사랑”
연초, 우리 모두가 함께 정한 우리 반 1순위 학급가치 키워드이다.
곧바로 우리 반 친구들은 큰 소리로
2순위 가치 키워드 “용기”로 후창 후,
"짝짝~ 짝짝짝~" 5번 박수로 경청 자세를 갖춰준다.
“ 친구들아, 선생님은 10살인 너희 나이의 5배가 될 정도로 나이가 많아.
그리고 20년 넘게 선생님으로 살고 있어.
그러다 보니 애써 보려고 하지 않아도, 다 보여버리고, 다 알아버리는 것들이 있어.
그런데 선생님이 아는 척하면 너희가 창피할까 봐
알면서도 모른 체 해 주는 것들이 많아.”
이 말을 시작으로 내 눈을 까슬까슬하게 하는
친구들의 여러 행동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내 말이 끝나자 한 친구가 묻는다.
“그런데, 선생님 몇 살이에요?”
평소 같으면 “100살” 하며 장난쳤을 텐데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터라
조금 전 말한 ‘너희 나이의 5배’라는 말의 논리를 지켜야 했기에
“50살” 답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한 내 나이를 말하면 되는데,
나도 모르게 지금 나이보다 5살 많은 '50'이라는 숫자를 말해 버린 것이다.
짧고 강한 '50'이라는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친구가 땡그란 눈으로 반응한다.
“50살이요? 선생님 참 동안이시네요.”
갑작스러운 3학년 친구의 반응에 순간 웃음이 나왔지만,
난 애써 웃음을 참고
“자, 공부 시작하자!” 굵은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한다.
그리고 등을 돌려 칠판에 단원명을 적으며 혼자 피식 웃는다.
‘동안'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하는 것일까?
feat. 정석 작가님 꽃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