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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Jun 07. 2024

교실을 비우다?

때론 총총한  -  노란쌤의 교실 공간 철학 



교직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긴 시간 동안 난 '교실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에 집중했다. 

아동 발달 단계상, 초등 시기에 다양한 경험과 자극에 노출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정보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오랫동안 대명제로 삼았던 이것에 의문을 품으며 

지금은 '교실에서 불필요한 무엇을 뺄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학생의 주도성에서 출발하지 않았거나

 주체성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들은 

과감히 없애고 

최대한 정돈된 깨끗한 환경을 만들고 있었다. 


“사서선생님, 올해 저희 반은 학급문고 받지 않을게요. 

매주 저희 반 도서관 이용 시간에 와서, 

친구들이 직접 읽고 싶은 책을 대출해 갈게요.”


난 학년 초, 도서관에서 100여 권 일괄 배부하는 학급문고 대신

 우리가 직접 고른 책으로 책과 친해지는 시도를 했다. 


교실에는 학급문고 책꽂이가 텅 비어있었고

예전 같으면 그곳에 꽂혀있던 책은 

학생들 책상 서랍 속에 선택받는 친구처럼 안정된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교실을 비워간다'는 건, 

어쩌면 정리 정돈이 약한 나의 단점을 보완하다가

서서히 승화된 의식의 변화일지 모르나 


'여백의 미가 꿈틀꿈틀 살아있는 교실'에서 

우리는 분명 서로의 자취와 궤적을 


더 크게, 

더 밝게,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틈을 열고 있었다.



비워야 보인다. 

비워야 또렷하게 보인다. 

비워야 온전히 보인다.


                                                                                      feat.  정석 작가님 꽃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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