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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Jun 08. 2024

내가 너를 안 예뻐한다고?

때론 총총한 - 노란쌤의 사춘기 교육법 


  

“혹 시간 되시면, 잠깐 교장실에서 차 한 잔 할까요?”    

 

‘교장실에 자주 놀러 가던 우리 6학년 친구들이 무슨 일을 벌였나?’ 하는 걱정을 안고, 

교장실 문을 무겁게 두드렸다.      


“다윤이가 어려서 힘드시죠? 

다윤이가 중간놀이시간, 지나가는 말로 담임선생님이 자기를 안 예뻐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왜?’ 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다윤이는 5학년 때, 우리 옆 반 학생이었다. 

갓 발령 난 다윤이 담임선생님께서는 친구들과 갈등이 잦은 다윤이 생활교육 문제로 힘들어하셨다. 


우리 반 학생들이 과학실에서 교과전담수업을 하던 어느 날, 누군가 교실 문을 두드렸다. 

다윤이 담임선생님이었다.


“ 부장님, 지금 저희 반 수업 중인데, 다윤이 아빠가 갑자기 찾아오셨어요. 

어제 있었던 친구들 다툼 해결 방법이 못마땅하신 듯해요.” 

    

“어서 수업하세요. 제가 아버님 상담할게요.”     


나는 학년 생활담당 부장교사로 다윤이 아버님과 차분하게 대화했고, 

이야기가 잘 돼서, 아버님은 기분 좋게 가셨다. 

나의 기억은 여기까지다.    


그런데 그때부터 다윤이는 자신의 단점을 다 알아버린 옆반선생님인 내가 불편했다고 한다. 

게다가 아빠가 연락 없이 거칠게 학교를 찾아온 것도 창피했던 터라 

분명 내가 좋은 시선으로 자기를 보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해인 6학년, 내가 다윤이의 담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동안 다윤이 행동 수정이 필요한 상황 때마다 

나의 피드백을 5학년 때 기억과 함께 받아들이다 보니 

행동 교정이 뻑뻑했던 이유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분명 교장선생님께서 분명 고급 정보를 들려주셨는데도 

나는 감사와 고마운 마음보다는 다윤이에게 미운 감정만 올라왔다. 

자신의 행동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나에게 문제 원인을 돌리는 것 같아서 미웠다. 


“제겐 가물가물한 옛 기억을 핑계로 지금 교정해야 할 행동을 변명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어쩌죠? 

갑자기 다윤이가 미워지려고 해요. 

차분하게 감정을 정리하고 어떻게 할지 방법을 찾아야겠어요. ”     


퇴근시간까지도 그 미운 감정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저녁 무렵에서야 미운 감정이 서서히 걷히더니, 

13살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이해되면서, 

학생과 기싸움 하고 있는 철없는 내 모습이 보였다.    

  

다음 날, 교무실 가는 길에 교장실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교장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저 그냥 다윤이를 미치도록 사랑해 버릴라고요.”

     

 그날 이후, 나는 졸업식 날까지 까칠 최절정 사춘기의 그녀를 미치도록 사랑해 버렸다.    

  

며칠 전, 교장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년 이 추억을 꺼내신다.      


“ 그때, 자네가 했던 

‘교장선생님, 저 다윤이를 오늘부터 미치도록 사랑해 버릴라고요’ 했던 말이,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나네.”     


나는 오늘도 미치게 사랑해야 할 친구들과 미치게 사랑하면서 살고 있다.      


                                                                                                       

                                                                                                                         feat.  정석 작가님 꽃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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