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대며 시간은 가고 방 안엔 달빛이

by 피연


시계 초침이 삐걱대며 일그러진 숫자 사이를 불안하게 거닌다

시간이 이상하게 흐른다

오래도록 바닥을 보지 않고 걸어온 인간이 외부 세계를 모조리 차단하고 방 안에 있다


똑, 딱 소리는 유언처럼 묻는다

영원한 시간이 주어지면 -.

극도로 혐오하고 피하고 싶은 -.

너를 상처입힌 사람들에게 할 -.

제일 질투나는 -.


시계는 오전 3시를 가리킨다. 창 밖엔 해가 중천에 떠있다

울렁거리는 초침은 멀미를 유발한다

어젯밤 잠을 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술을 마시진 않았었는데.

제멋대로 뛰어가던 음악을 튼다

뇌를 공명시키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야 시계소리가 안들린다

안전해졌다

위험해졌다


그 눈빛, 그 시선, 아무리 바라봐도 초점이 맞지 않던 검은 눈동자

늦었어. 안돼.

햇빛은 커튼 사이로 들어와 눈을 따갑게 찌른다

피곤한 얼굴에 주름이 선명히 비치는데 시계는 여전히 새벽이다

초침은 제자리에 머문다 갈 생각을 않는다

불안한 음악은 심장소리가 된다 제멋대로 쾅.

핸드폰을 던지고 소리가 멎자 초침이 다시 간다

깨진 액정 옆에 삐걱대는 시계가 변해있다

1 2 3

아니 I II III

갈색이 파란색이 되었다 초침에서 빛이 난다


영원한 시간이 주어지면 -.

극도로 혐오하고 피하고 싶은 -.

너를 상처입힌 사람들에게 할 -.

제일 질투나는 -.

이건 여태껏 태어나지 못한 자의 최소한의 예의. 귀화하듯 시계를 본다 눈동자와 마주친다 고개를 끄덕인다

해가 없는 새벽 창 밖엔 달이 떴다 시계는 비로소 간다

잠에 들기 전 잠에서 깨어 어두운 침대에 눕는다

파란 시계는 제 알아서 돌아간다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을 던진다 아주 하찮고 이상한 것만 골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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