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
"잘 헤어지는 것도 사랑이 할 일이다.
<사랑 수업>, 윤홍균"
노래를 들으며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매일 듣던 노래지만 괜히 여행 중 들으니 배경음악처럼 느껴졌다. 이별 노래 가사가 평소와 달리 귀를 슬쩍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무려 여행 첫날! 붐비지 않는 한낮의 지하철과, 비수기의 한적한 공항을 만끽했다.
비행기를 놓칠까 봐, 그리고 카페에서 책이나 읽을 심산으로 일찍 오긴 했는데, 그렇다고 3시간이나 일찍 도착할 줄은 몰랐다. 배도 애매하게 고프고 시간도 애매한 와중 아까부터 계속 보이던 ‘국립항공박물관’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이 도심 어디에 박물관이 있다는 거지? 공항 안인가? 시간도 남은 김에 화살표를 계속 따라가 보았다. 공항을 가로지르더니 출입문 쪽으로 이어졌다. 공항 안은 아니고, 그 밖 공원을 지나 보니 꽤 큰 건물이 나왔다.
무료 개방의 박물관은 월요일마다 휴무라고 쓰여있었다. 나는 운도 좋지. 오늘은 월요일이 아니다. 방문객들은 대부분 유아를 동반한 가족 단위여서 조금 어색했다. 혼자 쭈뼛거리며 들어가니 커다란 전시장이 나왔다.
비행기가 처음 발명되고, 현재와 같이 교통편으로 사용되도록 발전하는 과정이 쓰여있었다. 신성한 곳으로 여겨 개발되지 못하던 하늘이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고보니 나야 태어나보니 비행기가 있었지만 옛날 사람들은 아니었다. 열기구에 짐승을 태워보고, 나중에는 사람을 태워보지만 사고가 나고. 과학, 수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라이트 형제가 무슨 일을 했는지 찬찬히 읽었다.
어릴 때도 박물관에 자주 갔었다. 그땐 참 싫었다. 집에 틀어박혀서 만화를 보거나 웹 서핑을 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자꾸만 어린 우리를 끌고 박물관에 갔다. 읽을 글자도 너무 많고 지루하고 박물관은 또 왜 이리 넓었는지. 그런데 지금, 성인이 된 나는 이곳을 스스로 찾고 있다. 어떻게 인간이 날 생각을 한 건지 신기해하면서.
키도, 생김새도 제각각인 어린아이들이 진지하게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 저런 가족들 무리에 낄 수 있을까? 문득 혼자 돌아다니는 게 허전했다. 손을 잡고 다니던 누군가가 없어졌으니까. 아 맞다, 이런 생각 안 하기로 했지.
박물관을 구경하고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흘러 있었다. 다른 볼거리도 꽤 있는 것 같았지만 나에겐 충분했다. 여길 오지 않았다면 비행기의 역사를 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비행기 모형과 시각, 영상 자료들을 보니 호기심을 채운 어린아이처럼 내 눈도 반짝였던 것 같다. 초등학생이 기행문에 쓰듯, ‘관심과 흥미가 생기는 좋은 시간이었다.’
어린 내가 박물관 가는 걸 좋아했더라면 지금쯤 뭔가 달랐을까? 내게도 어린 때가 있었다는 게 생경하다. 박물관을 나서는데, 여러 가족 무리가 있어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빨리 혼자에 적응한 것 같았다. 며칠 후에 알고 보니 그건 아니었지만.
말을 하나도 안 하고 속으로 생각만 잔뜩 하니 조금 답답하면서 배가 고파져서 공항에 갔다. 입맛도 별로 없고, 여행지 도착 전에 때우는 끼니에 큰돈을 쓰기가 아까워서 둘러보다가 롯데리아가 보였다. 단품이고 세트고 요샌 다 먹기가 버겁다. 감자튀김만 일단 시키고 모자라면 더 먹으려고 했는데 배가 정말 불렀다. 쓸데없는 음식 값을 지불하지 않아 마음이 편했다.
잠시 카페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모든 사진에 풍경만 담기고 내 얼굴이 안 나올 것을 생각하니 조금 아쉬워서 셀카를 찍었다. 숨 막히게 어색한 표정의 사진 두 장이 남았다.
이것저것 태블릿에 적기 시작했다. 지금의 일기, 기분, 그리고 계획. 좀 쓰고 난 후에도 시간이 남아서 전공 수학 공부도 조금 했다. 누군가와 왔다면 공부를 하진 않았을 텐데, 이것도 혼자 온 것이 주는 자유겠지. 편하면서도, 공항에서까지 수학 pdf를 켠 게 뭐랄까 조금은 매니악했다.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게 무서웠었다. 이제 보니 사람들은 내가 혼자 다니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이 당연한 걸 이제야 알았다. 내가 셀카를 찍든, 박물관을 보든 감자튀김을 먹든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기껏해야 2초였다. 어쩌면 자의식 과잉이었던 것도 같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가 열리기 직전이었다. 근처 의자에 딱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둘, 셋 되는 일행들이 그곳을 지나쳐 다른 자리를 찾을 때 난 망설임 없이 앉을 수 있었다. 여전히 가족들이 참 많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들이 다 쌍으로, 가족으로 돌아다녔지? 나도 그랬었으면서 괜히 그런 생각을 했다.
옆 자리의 어떤 여자가 통화를 했다. 남편과 20대쯤 된 것 같은 아들에게 온 전화였다. 서로 다정하게 말을 했다. 남편이 도착해서는 길 험하니까 택시 타고 가라고 하고 있었다. 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들렸다. 내가 만약 걔랑 결혼했다면 저런 대화는 못했겠지. 나 생각해서 택시 타고 가라고 하는 걔의 모습이 상상이 안 갔다. 이러쿵저러쿵 그 애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는 나는, 잘 헤어지고 있는 걸까?
잠든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애지중지 들여다보는 아빠와, 옆에서 계속 웃으며 함께 길을 가는 엄마가 보였다. 또 이쪽 옆에는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태블릿을 들여다보며 앉아있었다. 겨우 걸어 다니는 남자아이가 다가와서 쳐다보자 아이 엄마는 “누나한테 안녕해야지? 누나 안녕~”이라고 말했고 아이는 뾱 뾱 소리가 나는 신발을 신고 열심히 공항을 활보했다. 정말 행복해 보이는 가족, 어딘가 짜증이 난 여자,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쉴 새 없이 보았다.
난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그전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려나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음, 적어도 비행기 옆 자리에 앉았던 커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 바로 옆에 여자가 앉았는데, 광이 나는 은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녀는 다리를 꼬고 발을 까딱거렸다. 그것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공교롭게도 딱 오후 3시의 햇살이, 비행기 창문을 타고 그녀의 신발에 내려앉아 또 정확한 각도로 내 눈에 들어왔다는 점이다. 가만히 있으면 눈을 피하겠는데 자꾸 번쩍, 번쩍 눈이 부셨다.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무언가 요청하는 게 무서워서 맨날 혼자 참았다. 그 사실을 인식하고는 조금씩 그런 습관을 깨고자 결심했던 시기였다. 옆에 남자친구에게 기대서 넷플릭스를 보면서 계속 치대고 하는 게 솔직히 좀 꼴 보기 싫었다. 그래 맞다. 부럽기도 했다. 나도 저랬던 때가 있었으니 유치하게 마음먹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과 상관없이 눈이 아팠다. 참으려고 할수록 발은 또 까딱, 까딱. 햇빛이 자꾸만 라섹수술한 내 눈을 찔렀다. 말을 해야겠다 싶어서 여자를 불렀다.
저기요. 여자는 뜻밖의 상황에 놀라며 에어팟을 빼고 나를 봤다. 저기 죄송한데, 발에 햇빛이 반사돼서 눈이 부시거든요.
표정이 너무나 적대적이었다. 횡설수설하며 저 옆 창문에서 햇살이 어떻게 반사되어 들어오는지 내가 허우적대며 가리키는 사이,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남자친구도 나를 빤히 바라봤다.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굉장히 불쾌하다는 얼굴로 날 쳐다보고는 발짓을 거두었다.
'죄송한데'라고 해서 진짜 죄송한 말을 한 줄 안 건가? 나였다면 죄송하다고 할 텐데 왜 내가 저런 표정을 봐야 하는 건지 정말 당황스럽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이제 눈은 부시지 않으니 음악 소리를 크게 하고 화를 다스렸다. 이런 상황이 싫고 무서웠었다. 기분은 좀 나빠도 견딜만했다. 어쨌든 불편한 상황은 해결되었다. 용기를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여자 인성이 저런데도 사귀네.
아직도 못난 생각과 미움이 가득한 나, 뒤끝 있고 마음이 넓지 못한 나는 끝없이 이별을 되새기며 잘 헤어지지 못했다. 그러니 사랑이 아직 할 일을 덜한 것이다. 그게 왜일까. 무엇이 문제여서 내 사랑은 이렇게 부서졌을까.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커플에게서 최대한 멀리 가려고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그렇게 나는 더 빠르게 김해공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