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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공부와 용산 가족 데이트

250406 일요일 일기

by 피연

며칠 전 약속한 용산 가족 데이트를 가기엔 공부할 게 많았다. 수학 전공만 5개 듣는 수학자(?)의 삶을 사는 나는 최근 친해진 친구 영향으로 드디어 수학 공부 방향을 잡았고, 4월은 시험의 달이다 보니 발등에 불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전화해서 이러저러한 상황을 말했더니 나는 카페에 두고 엄마랑 언니랑 돌아다니면 된다고 일단 오라고 하시기에 용산에 미리 가서 한 카페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아이파크몰은 다들 놀러 가는 곳이라 카공족은 당연히 흔치 않았고 나는 카페 한 구석에서 해석학 공부를 했다. 이렇게 전공이 재밌어본 건 처음이었다. 문제는 이제 5개나 듣는다는 것과 시험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 정도인데..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도 수학과를 완주할 수는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자주 못 보다 보니 할 말이 많았고 수다를 마구 떨며 예쁜 것들을 많이 구경했다. 무슨 명품 수건이 있다길래 갔다가 예쁘고 생각보다 가격이 괜찮아서 하나 샀다. 올리브영에서는 최근 열심히 하는 화장 방법을 알려주고 맛있는 고깃집에 갔다. 인생 네 컷도 찍고 젤라또도 먹고..


인생 네 컷에서 소품 쓰고 사진을 찍으며 깔깔대다가 문득 이 순간을 훗날 얼마나 그리워할까 생각했다. 상실에 대해 생각했다.


지난겨울 우린 싸웠다. 연락을 두 달 넘게 안 하면서 나는 말라갔다. 위염에 걸리고 입맛이 없어 살이 쭉쭉 빠졌다. 사무치는 외로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난 이제 가족 없이 평생을 살아가겠구나 싶을 정도로 큰 싸움이었다. 예상치 못한 계기로 화해했고 다시 잘 지내게 됐다.


겨울에 의사 선생님이나 상담 선생님이 요즘 우울감이 심하다며 가족과 싸웠고 남자친구와 이별했다고 이야기하면, 가족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며 두고 다른 문제를 주로 얘기했다. 나는 결코 아닐 거라며, 우린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아니었다.


나도 충분히 서운할 수 있고 오해할 법했지만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이 정말이지 후회되고 너무 부끄러웠다. 내 책임은? 지금껏 남 탓이나 하고 열등감에 빠져있었으면서 난 대체 뭐지? 한편으론 억울했다. 사소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것 같아서, 나도 방법을 몰랐는데. 미움을 걷어내는 법, 가족을 사랑하는 법.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알고 성찰하는 법, 그리고 불만을 토로하는 법.


내 의견을 싸움으로라도 표출한 후라, 이제 아무런 피해의식도 오해도 미움도 없었다. 그간 나는 얼마나 피곤하고 굳이 힘들게 살아왔던가.


날씨가 풀려 꽃이 핀 따뜻한 일요일 오후, 평화롭고 재밌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가족들과 놀고, 친구와 카톡으로 수학 관련 농담 따먹기를 하고, 놀고 나선 보람 있게 도서관도 가면서. 내일 또 한 주가 시작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부디 내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책상 위에 둔 인생 네 컷을 뿌듯이 바라보다 불을 끄고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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