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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친에게서 배운 것들

250408 화요일 일기

by 피연

1년간 사귀었던 전남친과 나는 둘 다 모쏠이었다. 썸만 길게 타며 애간장이 타들어가던 시기에 확 이어준 언니가 있다. 오랜만에 언니와 망원에서 만났다. 자연스레 연애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졌다. 별별 전남친 썰을 다 들었다.


연애애 있어 자존감은 참 중요하고, 내가 어떤 태도로 나오는지에 따라 연애는 달라진다. 나는 그런 취급을 당하고도 화를 내지도 못했던 게 답답했다. 하지만 그런 연애도 겪어서 나도 바뀐 것이니 수업료를 냈다고 치자. 자존감은 전보다 올라갔지만 이제 다음 누군가를 만날 때 난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


일단 너무 많이 좋아하기보단 조금씩 알아가며 이 사람이 괜찮은지, 마음을 줄 만한 사람인지 판단을 먼저 해야겠더라. 당연히 마음을 가득 표현하고 주는 건 쉽지만 이 단계가 없으면 그만큼 더 상처받는다.


그리고 화를 내는 법을 배워야겠다. 분위기 싸해지는 게 싫어서, 화를 내면 관계가 틀어질까 봐 겁이 나서 바보처럼 그냥 넘어가다가 일이 더 커졌었지.


항상 1순위는 나다. 나의 삶, 운동, 공부 등 내가 나답게 모든 걸 챙기고 그 이후에 애인이 와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이전의 나처럼 5분 대기조, 흔하고 언제든 볼 수 있는 여자가 아니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났다. 우린 맛집에서 밥을 먹고, 벚꽃이 활짝 핀 망원 거리를 걸었다.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인스타 명소였다. 우연히 와서 꽃구경도 하고, 젤라또를 먹었다. 길 가다 엄청 맛있는 청포도를 사고, 인형 뽑기 가게가 보여서 들어갔다가 언니가 실력발휘해서 죠르디 꽃다발을 뽑더니 날 줬다.


졸업 후 취직하면 얻어먹은 것들 돌려줄 일이 참 많다. 기꺼이 흔쾌히 어서 사주고 싶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이별의 겨울이 이렇게 지나가고 꽃도 결국은 폈다. 벚꽃 잎이 떨어지고 교정이 초록색으로 물들 즈음에는 또 다른 새로운 일들이 있겠지. 그때까지 하루하루를 즐기며 열심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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