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 한번도 정신건강의학과 혹은 심리상담센터를 가본 적이 없다.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 사실 폭식 증상이 심하게 나타났을 때에는 체중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어서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은 적은 있었다. 그때 나는 살만 빠지면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우울증도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게 최고의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욕억제제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고 약의 부작용인지 자살충동을 전보다 자주 느끼게 되었다. 본질적인 문제를 애써 무시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만 해결하려고 들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되었다. 내가 본질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는 데 까지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내가 그 이유를 찾는데 까지에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 뿐만이 아니라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담이나 정신건강의를 방문할 용기가 나지 않아 그 아픔을 홀로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정신건강의학과 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나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은 적이 없기에, 병원을 가면 더 효과적이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그런데 나 또한 병원을 일찍 갔다면 조금 덜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남아있다. 적어도 약물치료는 즉각적인 효과가 있기에.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방법 대신, 나는 내가 나를 치료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유능한 의사일 지라도 내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은 나만이 내게 해줄 수 있기에. 그렇게 나는 나를 알아가고, 나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나의 아픔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내 안에 품어주기로 했다. 이때 중요한것은 묻어두는 것이 아닌, 품어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내 안에 꽁꽁 숨겨두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품어주는, 안아주는 것을 뜻한다.
생각이 많을 때면 무작정 내 속마음을, 내 알 수 없는 감정을 내 귀에 들리게 입밖으로 꺼냈다. 내 앞에 아무도 없었지만, 마치 누군가가 들어주고 있는 것 처럼 다 털어놓았다. 그게 내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나 스스로에게 해주었다. 물론, 내 감정을 토로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내 귀에 들리게 입밖으로 내뱉었다.
생각만 하고 힘들어하는 것 보다, 말하고 힘들어하는게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했다. 울기도 더 자주 울었던 것 같다. 왜 나한테 이런 힘든일 이 생긴거냐며, 죽고 싶다며, 죽여달라며 울부짖는 내 목소리를 들으니, 내가 가엾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렇게 입밖으로 나의 문제와 감정을 말하고 나니, 내가 그 아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게 되었다. 인정하고 나니 나의 문제와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슬픔, 불안, 걱정과 같이 정의된 감정이 아닌, 내가 느낀 그 고유한 감정을. (인간에게 존재하는 그 수없이 다양한 감정들을 우리가 어떻게 다 정의하고 이름붙일 수 있겠는가? 단지 느낀대로 구분지을 수 있을 뿐이다.)
신기했다.
답답함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해방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