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인정이 곧 나를 정의내리는 유일한 지표라 여겼고 가벼운 비난조차 무시하고 지나가지 못하는, 나는 깨지기 쉬운 그런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그런 삶. 아직 큰 사회로 나아가지 않은 수험생의 신분에 불과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남을 위한 목표를 이룬 그 순간부터, 내 삶의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기에. 그 선택은 앞으로도 어쩌면 평생의 나의 길을 좌지우지 할 것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명확히 그려졌기에. 마침표를 선언했다. 사실 삶의 자기결정권이 없이 살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혼자 살아남아야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넘긴 채로 살아간다. 내가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고 스트레스 받았던 모든 것들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이 나의 삶을 움직였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보통 내면의 목소리와 외면의 목소리 중 외부를 더욱 중점적으로 여기며 그를 목표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 외부로부터 오는 행복감은 정말 찰나라는 사실을.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변화하는 나의 모습이야말로 진정 궁극적인 행복감과 느껴보지 못했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것이다.
사람의 진짜 모습은 혼자 있을때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늘 내가 홀로 있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던것 같다. 학교에 다닐때 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자존감이 정말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학교를 나와보니 정반대인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냥 남들에게 인정받는 나의 모습을 좋아했던 것 뿐 나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보다. 어쩌면 내겐 사회정체성만 존재할 뿐, 자아정체성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사회정체성이 곧 자아정체성이라 착각하고 동일시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어도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나는 왜 그 목표를 향해 가고 있던걸까?’ 때때로 우리는 자신이 목표하는 곳으로 달려가면서도 인생의 길을 잃곤한다. 내가 지금 어디로 왔는지, 또는 무엇을 향해가고 있었는지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목표에 이끌려 길을 걷는다. 머릿속엔 여전히 어디로가는 것인지에 대한 강력한 의문이 남아있지만 돌아가는 길이 더 두려워서 그냥 애써 무시한채, 한번 선택한 그 길을 되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에 잡아먹혀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타인이 설정한 목표에 인생을 지배당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 목표는 어느순간부터 왜곡되었고, 참된 본질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이해없이 목표를 설정하게 되면 중간에 길을 잃을 수 있다.
꿈을 찾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니,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니 편해졌다. 근데 꿈을 찾고 보니, 그닥 거창하지도 않다. 어쩌면 찾기전의 꿈과 같다. “내가 나로써 살아가는 것” 다른점은 이젠 그 방법을 안다는 것, 그리고 꿈이라는 것이 머리에서 마음으로 이해되었다는 것이다. 막연한 꿈일 뿐이었는데, 이젠 내가 나로써 살아갈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단순해보이는 깨달음은 내게 말로 다할 수 없는 해방감을 선물했다. 그동안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내 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동안의 나는 나로써 살고 있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주변에서 내게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며 애써 나를 그 기준에 끼워맞추려 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라 여겼기에 그렇게 되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세운 수많은 목표들도 결국은 세상의 인정을 향해 있었고 그게 전부라 여겼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생의 해답은 밖(외부의 목소리)이 아닌 내 안(내면의 목소리)에 존재했다.
학교 '밖'에 있었지만, 나는 내 '안'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어쩌면 '밖'이기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존재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필수적인 욕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더 이상 그것이 나의 삶의 주된 목적 혹은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또한 나 다운 모습이었다. 온전히 나이지 못했던 시간들 또한 나의 일부이고, 나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게 구분되는 것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느냐의 차이이다. 과거의 나는 내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해가며 외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면 현재의 나는 내 내면의 소리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내가 나답지도 않은데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그닥 가치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 멋대로 사는 것'의 가치는 생각보다 더 크다. 그로써 나는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났다.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알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던건 아마 내안에 내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다운 삶을 위해 용기낼 수 있는 사람.
더 나아가 타인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삶의 우선순위와 세상이 요구하는 우선순위가 충돌한다면, 나의 삶의 우선순위를 향해 우직하게 나아가길 바란다. 세상의 목소리에 휩쓸리며 살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