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모든 세상과 시간이 멈추었고
나는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나의 시간이 다시 흘렀으면 했다.
다시 예전처럼,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고 싶었다.
학교 밖을 택하고 가장 두드러지게 달라진 것은 또래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대인기피증이 심해 밖에 산책조차 나가지 못했지만, 부모님의 응원으로 용기를 낸다.
지역마다 나와 같은 학교 밖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지원을 해주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가 있다. 그곳에서 대표단을 선발하고 있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고, 사람을 만날 수 있음과 동시에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지원을 하고 선발되었다. 지역 내 대표단에서 대표를 뽑아 전국에서 모인 다른 대표들과의 회의를 거쳐 정책제안, 집행의 기회까지 이어질 수 있었고, 나는 대표로 선정되어 전국단위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새로운 사람들,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 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인사했을텐데, 우연히 비춰진 거울 속 내 모습은 위축되어있고 어깨도 펴지 못한, 낯선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니 거울을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내가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참을 수 없이 짜증났기에 의도적으로 피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자존감은 여전히 낮았을지언정, 대인기피증은 많이 완화된 모습을 보였다. 친구들과도 어느새 많이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내게 의지하는 친구들이 늘어난다.
대표단으로 활동하며 이들이 학교 밖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들었다. 안타깝게도 나와 같이 꿈을 찾고자 시작한 이는 한명도 보지 못했고, 대부분 각자의 상처 때문에 밖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내게 조금씩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학교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지금까지도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현재 어떤 감정인지.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감히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거운 일들을 감당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나는 너무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힘들어 해도 되는 것일까.
그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들어주는 것 뿐이다. 아무런 해결책도, 심지어는 위로도 하지 않는다. 나의 섣부른 판단과 말로 인해 혹여 그들에게 또다른 상처를 남기게 될까 조심스럽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괜찮아, 잘될거야, 힘내. 긍정적으로 비춰지는 한마디도 어쩌면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내 마음 편하자고 건네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말 없이 내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 알았으면 했다.
그 마음이 전해졌던걸까. 사소해보이는 그 행동 하나로 나는 누군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받고 싶었던 위로를 그들에게 함으로써 위로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