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고팠다

by hyncollection



나는 학교에 가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아이였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선생님과의 관계도 좋아 초등학교 내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상담시간에는 내가 강릉을 빛낼 인재가 될것이다 라는 말까지 하셨다. 교내 대회가 있을때면 늘 최우수상을 수상하였고 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도 좋은 성적을 유지하였기에 주변에서 끊임없는 기대와 관심, 칭찬을 받았다. 스스로에게 기준이 매우 엄격한 성향인지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의 반응이 내가 나를 정의하고 평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사실 학교를 좋아했음에도 홈스쿨링을 선택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그렇다. 부모님과 주변의 기대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 홈스쿨링에 생각이 있으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주변에서도 잘 할 것이라는 반응을 듣고 자라왔다. 물론 내 의사를 물어보시고 가장 중요시여기는 분들이시지만, 어릴때 부터 듣고 자라온 탓인지 나는 그게 당연한거라는, 어쩔 수 없이 이미 정해진 길이라는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 지니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럼에도 홈스쿨링에 후회를 한 적은 없었다. 나 또한 그들이 얻지 못하는 것을 얻고, 배우고 살아가고 있었기에. 어쩌면 더 값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런데 어쩌면 마음 한 구석에는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싶다 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학교 밖을 나온 뒤로 가끔가다 교복차림의 친구들을 만날 때면 그깟 교복이 뭐라고,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시간표, 급식, 책상, 칠판. 이제 나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그 단어들이 낯설게도 그립게 느껴진다.

겨우 고요해졌던 마음은 순식간에 원망과 분노로 가득찼다.


나의 선택이 아닌, 남들의 강요로

다른 여정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정의 내린다.



가시돋친 말들을 내뱉어내다보니 점점 대화는 헛바퀴 돌기 시작했고 결국 감정싸움이 되어버린다. 처음에는 나를 도와주려 했던 사람들도, 심지어 가족들 조차도. 나를 포기해버린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누군가의 실망스럽고 한심한 눈빛들. 아직까지도 아물지 않은 가슴에 화살같이 꽂힌 말들. 그들의 태도, 표정, 말투. 절망스러웠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지는 것은 왜였을까.



오랜만에 감정이 찾아옴과 동시에, 나는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있음 또한 눈치챌 수 있었다. 그 구멍은 내게 계속해서 외로움과 원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었고 자살충동으로까지 이어지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어떤 것 이었다. 그 텅 빈 마음을 채우고 싶었다.



나는 먹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고 먹고, 먹고, 또 먹었다.

몸이 기아상태여서였을까. 몸에서는 계속 음식을 갈구하는 듯 보였다.

덕분에 정상체중까지 빠른 시간안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한달에 10키로씩 2달만에 20키로가 증량된 수준이었기에, 생활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무리가 되었다.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폭식으로 늘어난 몸무게였으며 무엇보다 그 허전함은 채워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커지기만 했기에, 우울감은 극치에 다다르게 되었다. 급격히 달라진 겉모습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외형까지 바뀐 모습을 보면 인생낙오자라고 내게 손가락질 할 것만 같았다. 점점 더, 내가 만든 감옥으로 깊숙히 들어간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왜이럴까라는 물음표로 가득했던 일상이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채우고 싶었던 것은 허기가 아닌

기억 속 행복했던 추억들이었다는 것을.

토요일 연재
이전 05화어린 나, 여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