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결론을 내리기엔, 당신도 아이도 너무 젊다.”
우리가 어린 시절 초·중·고등학교를 지나며 받아온 교육은 대부분 결과 중심적인 평가였다. 시험 점수가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결정해 주는 기준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랐다. 점수와 평가에 대한 기억은 내게도 여전히 생생하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에서 40점을 받고는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내 점수를 보던 엄마의 무뚝뚝한 표정까지 또렷하게 떠오른다. 지금의 엄마들은 시험 점수의 무게감 속에서, 우울한 감정을 애써 숨기며 자라야 했다. 책가방의 무게보다 훨씬 더 무거운 ‘성적’의 무게가 마음을 짓눌렀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삶 속 거의 모든 영역—주변 환경과 생활 방식까지—결과 중심적인 사고가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지금 우리의 뇌는 그렇게 사고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고, 그 관점과 방식이 굳어져 버렸다. 부모가 된 우리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같은 회로로 작동한다. 그리고 뇌는 늘 이렇게 우리에게 속삭인다.
“결과는 안 좋을 거야.”
이제 우리의 뇌는 과정의 힘을 기억하는 능력이 없다. 무언가를 잘못해서 혼이 나거나, 야단을 맞거나, 친구와 싸우거나, 시험 점수가 나쁘거나, 동생과 다투거나,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거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등, 인생의 크고 작은 사건마다 ‘안 좋은 결과’를 저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라는 단어가 떠오르면 본능적으로 “안 좋다”라는 결론이 따라붙는다. 예를 들어 아이가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단 1초 만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내 아이의 미래가 안 좋을 것이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에게 당장 컴퓨터를 끄라고 일단 명령을 한다. 명령이 빠르게 실행되지 않으면 화부터 낸다. 우리들은 ‘과정’을 칭찬 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 반면 ‘결과’에 의해 칭찬을 받거나 비난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이 세대가 빠르게 결론을 내려야 하는 강박적인 사고 속에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자라면서 결과가 항상 중요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던 적은 많지 않다. 이렇게 성장한 엄마들의 마음에는 늘 “이건 나중에 나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불안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이것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런 사고방식이 무의식 영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빠른 판단이 뇌를 지배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요즘 게임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고 해보자. 머릿속에서는 아주 빠르게 3단계로 결론을 향해 달려간다.
1단계: 이대로 두면 게임만 하고, 공부도 안 하고, 할 일도 안 하고, 책도 안 보겠지.
2단계: 그러다 결국 게임 중독자가 되고, 문제아가 되겠지. 대학도 잘 못 가고, 별 능력도 없이 살겠지.
3단계: 결국 남 밑에서 단순 업무만 하며 간신히 먹고살다가, 평생 내 짐이 되는 건 아닐까.
겉으로는 ‘결과 중심적 사고’지만, 본질은 내 불안이 아이의 미래를 단정 짓는 것이다. 같은 행동이라도, 내가 좋게 보면 ‘몰입’, 나쁘게 보면 ‘중독’이 된다. 판단 기준은 오롯이 부모인 나에게 있다.
부모가 자녀를 판단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판단이라는 것은 판단 혹은 평가라는 작은 단어가 아니다. 그 속에 결론이라는 작고도 단단한 알맹이가 있다. 아이를 향해 단정적인 생각을 할 때 삶의 결과를 예상하고 마음속으로 그리고 상상한다. 게임을 하는 아이를 볼 때 당신의 결과중심적인 사고의 패턴은 아이의 미래의 도화지에 시커먼 물감을 들이붓는다. 그 검정도화지에 우리 아이들이 아무리 색색의 컬러로 밑그림을 그려본들 엄마의 눈에 아이가 만드는 세상이 보이기나 할까? 몰입의 세계는 아이들의 세상이 펼쳐지는 순수함과 열정이 담긴 희망의 블랙홀이다. 아직 몰입하고 있는 아이가 나의 시선 때문에 중독으로 돌아서 버리는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들은 아직 엄지손톱만 한 떡잎이다. 벌써부터 나쁜 나무라고 단정하기엔 이르다. 상추인지, 고추인지, 방울토마토인지 싹만 보고 알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버린다. 결과 중심적 사고는 아이의 가능성을 꺾는 독약이다.
눈을 잠시 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혹시 당신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결론을 먼저 내리고 있지 않은가? “이 나이에 가진 돈이 이것뿐인데, 내가 가진 지위가 이 정도인데…” 하며, 지금 상태가 인생의 마지막 결과인 것처럼 여기는 건 아닐까?
당신의 삶은 아직 한창 진행 중이다. 아직 힘이 있고, 달려갈 수 있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결론을 내리기엔 이르다. 당신의 꿈은 여전히 유효하고, 인생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