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고 쓰다

구원을 향한 작은 틈새

독서일기 『G.H.에 따른 수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봄날의책)

by 서정아

배수아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번역가로서의 배수아를 신뢰한다. 리스펙토르라는 낯선 작가의 책을 집어들게 된 것도 그가 번역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타국의 언어를 해독할 능력이 없는 독자로서 이토록 훌륭한 번역가의 존재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사실 친절하게 우리말로 번역된 글을 읽고도 쉽게 감상을 말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래서 독서일기를 쓰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서사적인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것이 딱히 없고 인물의 내면적 사고의 흐름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글이기에 작품 속 어떤 상황을 예로 들어 감상을 이야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문장 한 문장 놀라움의 연속이며, 쉽지 않은 글인데도 이 문장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라게 된다는 점이다.


사고의 틀. 우리가 갇혀 있는 그 사고의 틀은 어쩌면 감옥이다. 몸을 옥죄는 것보다 더한 정신의 감옥. 그 틀을 깨부순다는 것은 이 책의 주인공이 바퀴벌레의 체액을 삼키기로 결심하는 그 일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구원은 사물 자체에 내재해야만 한다. 사물 자체에 내재하는 구원은 바퀴벌레의 흰 덩어리를 입안에 넣는 일일 것이다. …(중략)… 바퀴벌레의 덩어리를 먹는 것은 온전한 나 자신이어야 하며, 뿐만 아니라 내 공포심과 더불어 그것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오직 그런 식으로만이, 나는 수행하게 될 것이다, 갑자기 내게 반죄(anti-sin)의 의미로 나타난 그 일을. 바퀴벌레의 튀어나온 내장을 먹기, 그것이야말로 반죄이다. 죄는 내 순진한 순결이다.”(226-227쪽)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신은 특정한 종교 안에 있지 않다고 늘 생각해왔다. 이런 내 생각이 신실한 누군가에게는 불경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무신론자였다가 최근 들어 불가지론자로 바뀌게 되었는데,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단순히 어떤 경전이나 종교시설, 혹은 천국이라는 이상적 공간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리스펙토르가 이 소설에 쓴 것처럼 “우리가 원하면 원할수록 그만큼 더 많이 신은 존재한다. 우리가 감당해낼 능력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더 많이 신은 우리에게 할당된다.”(208쪽)

나는 사실 신이라는 존재를 삶 속에서 더 많이 만나기를 애타게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 순간 구원받고 그 희열에 몸서리치기를. 나를 옥죄고 있는 틀을 깨부수고 진정 자유로워지기를. 그러나 나는 아직 그만한 감당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신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 테다.


리스펙토르의 이 소설은 내게 무척이나 신학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신을 발견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의 틈새를 이 책이 열어주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구원이라는 것은, 고통과 외로움을 감수하고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다가 어느 순간 내가 가진 사고의 틀이 확장되거나 깨어질 때 찾아오는 것이리라 믿는다.




리스펙토르.jpg


책 속에서


만약 우리가 더 크고 압도적인 굶주림을 가졌다면 만끽할 수 있었을 쾌락. 우리는 몸이 원하는 만큼만 우유를 마신다. 그리고 쉽게 싫증을 느끼는 우리의 눈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꽃을 감상한다. 우리가 원하면 원할수록 그만큼 더 많이 신은 존재한다. 우리가 감당해낼 능력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더 많이 신은 우리에게 할당된다.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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