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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쓰게 될 것인가

독서일기 『쓰게 될 것』 (최진영, 안온북스)

by 서정아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인 <여기 아이들은 같이 놀지 않는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이란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작품이다. 감독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성지이면서 동시에 배타와 증오의 공간이기도 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무슬림과 유대인 사이의 갈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에서 인터뷰를 했던 아프리카계 팔레스타인 남자의 말대로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은 예루살렘에 와서 신을 찬양하고 평화를 기도하지만 뒤에서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한다. 선(善)을 앞에 내세우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벌이는 무참한 폭력과 살상. 그 아이러니가 최진영의 소설 「쓰게 될 것」에도 여러 번 언급되고 있었다.


소설은 전쟁을 반복적으로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할머니가 손톱에 물들여준 봉숭아 꽃물은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마치 피처럼 보였기에 어린 화자는 울어버린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전쟁 상황에서 ‘온몸에 봉숭아 꽃물을 들인 사람들’의 모습으로 변환된다.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이기도 하는 고운 사람들이 타인의 몸에 피를 흘리게 하거나 피를 흘리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화자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성경 속 문장을 읽고서 ‘폭탄과 총으로 서로를 죽이는 사람들도 빛과 소금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라는 문장을 보고는 ‘그렇다면 사람들의 악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를 통해 우리는 전쟁 상황을 실시간으로 손쉽게 볼 수 있다. 그것이 지금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가까운 일 같아서 몸서리쳐질 때가 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경전을 읽는 사람들이 쏘는 총과 미사일이란 대체 무엇인가. 왜 사람은 누군가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면서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총을 쏘는가.


‘쓰게 될 것’이라는 제목의 ‘쓰다’라는 동사는 글쓰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소설 속 화자가 엄마와 집을 떠나면서 가방에 물건들을 챙길 때 총은 안 챙겨가냐고 묻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엄마가 대답한다. ‘그걸 가지고 있으면 결국 쓰게 될 거야. 남에게든, 나에게든.’ 총을 가지고 있으면 총을 쓰게 될 것이다. 펜을 가지고 있으면 글을 쓰게 될 것이다. 그 밖에 우리는 또 무엇을 가지고 있나. 우리는 무엇을 쓰게 될 것인가.


최진영 작가는 신과 경전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끝끝내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를 제대로 보고, 보살펴야 할 것들과 싸워야 할 것들을 분간하고, 싸워야 할 것들과는 싸워야 할 것이다. 써야 할 것들을 소중히 지니고 있다가 마침내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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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나의 일기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살아야 한다면 사는 게 낫다.’ 무의미한 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매일 밤 삶을 선택한다. 할머니에게도 총이 있었을까? 전쟁을 세 번이나 겪는 동안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전쟁 속에서도 서로를 돕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나의 신이었다.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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