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고 쓰다

여성의 글쓰기

독서일기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에이드리언 리치. 바다출판사)

by 서정아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결국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필요 조건인 것 같다. 나 역시 언제나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다. 글을 쓰다보면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글쓰는 시간을 운용하는 방식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자투리 시간을 모아쓰는 방식으로는 소설을 쓰기가 어렵다. 진도를 나가려면 최소 3~4시간은 통으로 집중해야 한다. 그렇기에 누군가로부터 어떤 일을 함께 하자고 제안받거나 사교적인 모임에 초대를 받으면 거절을 하게 될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대체로 어렵다. 일단 사람들은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나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의 숨겨진 노동 시간에 대해,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구절절 말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말하기엔 어쩐지 구차한 느낌이 든다. 그걸 노동이라고 말하면 괜히 유난떠는 것만 같다.

장을 보고 가족들 밥을 챙기고 그릇들을 치우고, 금방 쌓이는 세 식구의 빨랫감을 처리하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비우고, 아이 공부를 봐주고, 숙제는 했는지 씻었는지 이를 닦았는지 체크하고,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컨디션을 확인하고 시간 맞춰 약을 먹이고, 잠이 안 온다는 아이 옆에서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려주고… 그런 작고 작은 일들. 십여 년 동안 매일 해온 일이지만 아무런 표도 나지 않는 일들.

매일 그런 일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 남는 시간에 소설을 쓰려면 시간이 늘 빠듯하다는 말을 구구절절 하기는 어쩐지 싫다. 이가 아프면 나의 모든 일정을 변경하거나 취소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마음이 불편하다. 사노동과 육아가 내게 무가치해서가 아니라, 그런 순간엔 내가 예술과는 동떨어진, 그냥 생활인 같아서. 작가로서의 치열함을 좀 더 갖지 못하고 그저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유지하는 데 복무하는, 수동적인 사람럼 느껴져서. 모든 게 다 구차한 핑계 같아서.


에이드리언 리치는 <분노와 애정>이라는 에세이에서, 세 살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여성이 이제 막 세상에 나온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추억과 부러움에 젖어들면서도 한편으로 이렇게 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일들도 안다. 그의 삶이 절대로 단순하지 않다는 것, 그는 지금도 다른 사람의 삶의 속도에 맞춰-아기의 규칙적인 울음뿐만 아니라 세 살 아이의 요구와 남편 문제까지-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내가 사는 건물의 여자들은 여전히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고, 매일 개별 가족 단위 안에서 빨래하고, 공원에 세발자전거를 몰고 가고, 남편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아기를 봐주는 수영장과 놀이방이 있고 주말이면 아빠들이 유아차를 밀기는 하지만, 여전히 육아는 개별적인 여성의 개별적인 책임이다.’

아이를 키우는 기혼 여성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삶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라는 그 말을 여러 번 되뇌게 된다.


여성 작가의 글, 특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성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예술에 대한 열망과 생활의 고단함 사이에서의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러나 타인의 삶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속도를 잃지 않고 글을 써내려가다가 마침내 더 깊은 통찰에 도달한 이의 모습에서 나는 강인한 내면의 힘을 본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도 커다란 힘이 되는 순간이다.





책 속에서


만나는 풍경에서 완전히 제외된 여성들을 생각한다. 자기 아이들을 먹여 살리려고 간밤 거리에 나간 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의 설거지를 하고 다른 사람의 아이들을 돌보는 여자들을 생각한다.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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