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고 쓰다

희망의 푸른 잎

- 한국춤 <네 개의 눈> (안무, 춤 : 하연화 / 25년 6월)

by 서정아

대선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버스는 산복도로를 빙글빙글 돌아 목적지에 나를 내려주었다. 공원 입구에서 바둑을 두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풍경. 이런 풍경들 앞에서는 종종 세월이 무색하다. 몇 년 전에도, 몇 십 년 전에도, 똑같은 장면을 보았던 것만 같은 기시감.


오르막길을 조금 걸어 소극장에 도착했다. 입장 시간이 아직 되지 않아서 프론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보니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던 풍물패 후배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마주침이어서 서로 여긴 어쩐 일이냐고 물었는데, 알고 보니 이번 공연의 무대감독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이렇게 열심히 훌륭하게 잘 지내고 있구나 싶어 마음이 흐뭇했다. 어떤 인연은 예고 없이 이렇게 만나지기도 하는구나. 물론 어떤 인연은 오래도록 마음에만 지니고 영영 못 만나게 되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 춤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국악원이나 문화회관에서 하는 춤 공연을 보러 간 적은 있지만, 소극장에서 하는 춤 공연은 처음이다. 민족미학연구소에서 주최하는 <젊고 푸른 춤꾼 한마당>. 그 날의 여러 작품 중 하연화 춤꾼의 <네 개의 눈>에 대한 기억을 풀어 본다.


초록빛의 의상을 입고 나온 춤꾼의 표정이 비장하다. 허리춤에는 눈이 네 개인 방상시탈이 묶여 있다. 궁중 나례나 장례 때 악귀를 쫓기 위해 사용했던 탈이다.


방상시탈 (출처 : 국가유산청)


춤의 초반에는 고통과 슬픔이 가득하다. 문둥병으로 구부러진 손가락, 숨조차 잘 쉬어지지 않는 답답한 현실. 그럼에도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움직이는데, 그 애씀이 눈물겹다.

그러나 슬픔을 넘어서서 춤은 점차 상승한다. 엎드려서 몸부림치고 흐느끼던 그가 어느 새 발돋움을 한다. 굽어있던 손가락들이 펴지고 몸의 움직임은 역동적이 된다.

어느 순간 그는 마른 나뭇가지 하나를 발견하는데, 나뭇가지 끝에는 매화처럼 보이는 작은 꽃이 한 송이 피어 있다. 꽃 한 송이 애처롭게 달린 그 나뭇가지로 그는 자신을 둘러싼 억압적 외부 세계를 쳐낸다.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이,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듯이, 나뭇가지를 칼처럼 휘두른다. 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한 획. 그 결기가 매섭고 믿음직스럽다.

나뭇가지에서 잎이 피어나는 것까지는 작품 안에서 볼 수 없었지만, 어쩌면 그의 몸을 감싼 초록색 의상이 앞으로 피어날 희망의 푸른 잎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춤꾼 하연화 (출처 : 공연 팸플릿)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엄청난 사건들을 겪고, 우리는 조기 대선으로 나라를 이끌어 갈 새로운 지도자를 뽑았다. 손가락이 구부러진 채 고통스런 숨을 쉬던 시기는 이제 넘어선 셈이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다. 모든 악습과 잘못된 생각들, 억압과 폭력, 그런 악귀들을 끝까지 쳐내는 결기를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이 손짓하는 방향으로 힘차게 뛰어오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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