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채식주의자>를 보고 (25년 6월 /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 여러 사람들과 한강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유독 <채식주의자>의 내용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이들이 많았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대체로 형부와 처제 사이의 성관계라는 설정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형부와 처제 사이라는 것이 중요한 지점은 아닌데, 그걸 알아도 수용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러니 어떤 학부모 단체에서 학교 도서관에 <채식주의자>를 비치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까지 한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이는 사건은 불편하지 않은 걸까. 문학작품에서 살인이라는 설정은 되지만 근친상간이라는 설정은 안 된다는 건지, 카뮈는 되지만 한강은 안 된다는 건지 모를 일이다.
때때로 소설에 사용된 어떤 소재나 설정이 전체적인 맥락이나 분위기, 주제적 측면과 관계없이 그 장면의 자극성만 독자들에게 너무 과하게 어필되는 것을 보면 창작자로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건 문학이 아닌 다른 장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연극화한 작품이 올해 국제연극제 폐막작으로 올라왔기에 과연 어떻게 장르 변환이 이루어졌을까 기대와 궁금증을 갖고 가보았다. 이탈리아의 다리아 데플로리안이 각색, 연출을 했고 네 명의 이탈리안 배우들이 등장한다. 무언극일 거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수많은 독백들로 이루어진, 소설 <채식주의자>를 이탈리아어로 낭독하다시피 하는 연극이었다. 무대 위편에 영어와 한국어로 자막이 나왔기에 마치 책을 읽으며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원작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 의도가 제대로 구현된 것 같았다.
형부가 영상 촬영을 하기 위해 주인공 영혜의 몸에 꽃을 그리는 장면을 어떻게 형상화 했을지가 가장 궁금했는데, 그 장면의 연출에 감탄하고야 말았다. 나체 상태로 벽에 붙어 있는 영혜의 몸에 조명을 비추고, 형부가 OHP 영사기를 돌린다. 그리고 OHP 필름에 그가 한 획씩 붓질을 하는데, 그러면 그 색채가 영혜의 몸에 겹쳐진다. 여배우가 무대 위에 나신으로 서 있지만 전혀 선정적이지 않고, 너무도 아름답고 예술적인 장면이었다. 영혜는 그렇게 꽃이 되고 나무가 된다. 이토록 폭력적인 세계에서.
훌륭한 연극을 한 편 보고 홀로 걷는 밤길. 영화의 전당 앞마당에서는 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었고, 춤과 노래, 그리고 술잔을 부딪치는 청춘의 열기가 가득했다. 그런 바깥세상의 소란함도 좋고, 그 소란함 곁을 충만한 마음으로 혼자 걷는 것도 좋았던 6월의 어느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