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고 쓰다

서서히, 느리게, 지속적으로

- 영화 <마스터마인드>를 보고 (켈리 라이카트 감독 /2025년 9월)

by 서정아

2025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 또는 어떤 사건을 저지른다. 그러나 사건 그 자체보다는 언제나 그 이후가 문제다. 이후에 일어나는 문제들은 벼락처럼 한 순간에 닥쳐오기도 하지만, 서서히, 느리게, 지속적으로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더 많다.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 미술관을 털어 돈을 벌어보겠다는 허황된 생각. 그리고 너무나도 서툴고 허술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절도와 도주 과정. 스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범죄 행각을 보면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사건 자체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저렇게 치밀하지 못하게 범죄 계획을 세우다니 싶은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들이 대체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들은 종종 갑작스럽게 벌어지고,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고, 허술한 태도로 뭔가를 해버린다.


그리고 그 일들 이후에 감내해야 할 것들. 상실해가는 것들. 삶에 대한 허탈감.


가끔은 나 역시도 삶이 서서히, 느리게, 지속적으로 무너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마냥 슬프고 허망하다. 신중하고 단단한 선택을 하면서, 내 이름의 뜻처럼 곧고(貞) 우아한(雅)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데 말이다.


(사진 출처 :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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