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고 쓰다

동그라미라는 프레임

- 영화 <동그라미>를 보고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2025년 10월)

by 서정아

예술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영화.

<카모메 식당>의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연출했다.

일터 근처에 <카모메 식당>이라는 일본식 카레집이 있는데, 동료들과는 늘 그곳을 지나쳐 다른 식당에 간다. 한번쯤 가봐야겠다고, 지나칠 때마다 생각한다. 생각은 하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일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아주 사소한 일부터 커다란 일까지.


동그라미그리기1.jpg


영화의 주인공 사와다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자신만의 예술 활동을 하지 못하고 유명한 현대 미술가의 어시스턴트로 일할 뿐이다. 그러던 중 퇴근길에 팔을 다쳐 어시스턴트로서의 작업이 불가능해지자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게 된다. 별달리 할 일이 없어진 그는 우연히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개미의 움직임을 따라 동그라미를 그리는데, 그 그림이 우연한 계기로 명망 있는 미술 평론가의 주목을 받고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갑작스레 유명세를 얻는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엄청난 철학적 의미를 담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동그라미 그리기2.jpg


물론 영화의 상황은 극적으로 표현된 것이고, 현실에서는 미술가가 그동안 쌓아온 필모 없이 단 하나의 작품으로 그렇게 유명세를 얻기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간의 필모가 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평가가 온전히 실력 자체에 대한 것인가, 혹은 권위를 가진 누군가의 인정과 행운이 중요한 요소인가를 생각해보면 내가 접하는 유명 예술작품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내가 예술을 접하는 경로도, 작품을 판단하는 기준도, 어떤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동그라미그리기3.jpg


영화 <동그라미>에서는 주인공이 그림으로 그리는 동그라미 그림 외에도 끊임없이 원형의 이미지들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원주율을 외고 다니는 노인, 불교에서 원의 의미, 식빵 가운데에 동그랗게 구멍을 뚫는 행위, 동그란 전구, 동그란 보름달…. 심지어 주인공의 직장 동료, 편의점에서 함께 일하는 알바생은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려서 주인공을 쳐다본다. 문지방의 동그란 구멍을 통해 주인공을 바라보는 옆방 남자도 있다. 다시 말해서, 주인공 사와다는 동그라미라는 프레임을 통해 보여진다. 물론 그는 예술가로서 근원적인 자기표현의 욕구가 있기에, 어느 순간이 되면 다른 방식으로 원 그림을 변화시켜 보기도 한다. 그러나 평가자들의 기준에서 벗어난 행위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하고, 그는 결국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버리고 동그라미라는 프레임 안에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


동그라미그리기4.jpg


영화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결국 인정 욕구를 넘어서는 주체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미 유명세를 얻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행위인가 싶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한편으로는 속이 후련했다. 예술은 누가 뭐라 하든 창작자의 주체적인 생각과 행위가 바탕이 되어야 하니까.


특정 예술작품에 대한 과한 해석, 과한 찬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였다. 해석도 혹평도 과찬도 모두 자유지만, 평가에 있어 권위를 가진 사람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대중에게 너무도 영향력이 크고, 어떤 찬사는 결국 다른 좋은 작품을 소외시키거나 배제시키기도 하니까 말이다.


(사진 출처 : Daum)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서히, 느리게, 지속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