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고 쓰다

냉혹한 붕괴

- 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보고 (박찬욱 감독 / 2025년 9월)

by 서정아

2025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박찬욱 감독의 전작 <헤어질 결심>에서 주인공의 심정을 가장 잘 드러낸 대사가 “나는 완전히 붕괴됐어요.”라면 이번 영화 <어쩔 수가 없다>에서는 제목 그대로 “어쩔 수가 없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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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좋아하던 유순한 남자가 화분으로 사람을 죽이겠다고 결심하기까지의 시간. “어쩔 수가 없다.”는 말 속에도 결국은 ‘붕괴’가 포함되어 있다. <헤어질 결심>에서의 해준은 사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붕괴되었고, <어쩔 수가 없다>의 만수는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붕괴된다.


그러나 해준의 붕괴가 비록 파멸적이더라도 한편으로는 절절한 사랑의 고백이라면, 만수의 붕괴는 파멸과 체념뿐이다. 그러니 ‘붕괴’도 다 같은 붕괴가 아니다. 그 처절한 고백을 듣고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 모래에 자신을 파묻어버리는 서래의 마음 같은 것이 <어쩔 수가 없다>에는 없고,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세계는 냉혹함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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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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