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다잉>을 보고 (매티아스 글래스너 감독 / 2025년 12월)
삶은 비애로 가득하다. 누구나 종국에는 죽음이라는 결말을 피할 수가 없는데, 그렇다한들 그 사이사이 다가오는 사건들에 초연할 수가 없다. 크고 작은 갈등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후회하다가 예고 없이 끝나는 삶. 그러나 그 비애를 오롯이 감당하며 살아가므로 인간은 존엄하다. 지리멸렬하고 처절한 순간조차 인생의 한 장면으로 껴안고 있으므로 삶은 고결하다.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비롯해 각종 상을 휩쓴 독일 영화 <다잉>은 이러한 비애와 지리멸렬함, 처절함 등을 삶에 대한 기본 인식으로 깔고 있다. <페르시아어 수업>에서 독일인 장교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라르스 아이딩어가 주연으로 등장하는데, 이 영화에서도 역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톰’은 엄마와의 뿌리 깊은 갈등을 가진 남자이며 형식적인 가족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여동생은 불안한 감정에 흔들리며 술에 의존한 채 유부남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두 사람의 부모는 각각 기억을 잃어가는 병과 신체적 질환을 앓으며 죽음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톰은 작곡가 친구에게 받은 ‘다잉’이라는 곡의 지휘자로서 무대에 오르지만, 관객으로 온 여동생의 발작적 기침과 구토로 공연은 엉망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렇게 요약적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와 감정들이 있다. 가장 오래 잊히지 않는 장면은 톰과 어머니가 식탁 앞에서 나누었던 대화였다. 톰에게, 네가 아기였을 때부터 너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고백을 하는 어머니의 표정은 너무도 담담하기만 하다. 안고 달래도 자꾸 울기만 하는 너를 벽으로 던졌다고, 그러고는 곧, 내가 던진 게 아니라 네가 떨어졌다고, 그게 맞다고,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내가 너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에 톰 역시 담담하게 대꾸한다. 괜찮다고, 나도 당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노라고.
서로에게 위악을 부리는 그들의 모습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먼저 상처받을까 두려워 위악을 부리고 그렇게 벽이 하나둘 생기며, 나중에는 이게 위악이었는지 애초부터 미움과 증오였던 건지 알 수 없게 된다. 나에게도 그런 관계와 감정들이 있고, 아마 어떤 실타래들은 너무도 복잡하게 꼬여버려서 죽을 때까지 풀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삶은 겨울 저녁 내리는 비처럼 스산하고 뼛속까지 시리지만, 어쨌거나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여기고 그런 일들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보면 역설적으로 내 삶이 분명하게 자각된다. 나는 죽어가는 존재이고, 그렇기에 지금 명확하게 살아있는 존재인 것이다.
(사진 출처 : Daum)